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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와 미국, 또 불거진 악연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10 18:15
HUAWEI TECH-SMARTPHONES/SUPPLIERS

중국 IT기업 화웨이는 8월말 7나노미터 칩을 탑재한 신형 휴대폰 ‘메이트60 프로’로 출시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화웨이 ‘쾌거’로 들떴다. 중국 최대 IT기업 화웨이는 8월 말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이 내장된 신형 휴대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했다. 화웨이의 휴대폰 업그레이드는 3년만이다. 새 칩은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SMIC가 생산을 맡았다.

이를 두고 중국이 미국의 뺨을 때린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집요한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독자적인 반도체 혁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견해를 대변하는 환구시보는 "지난 3년간의 침묵 이후 화웨이가 마침내 최신 스마트폰을 출시했다"며 "이는 미국의 극단적인 억압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미국과 악연이 깊다. 반미 애국주의의 선봉에 선 기업이 바로 화웨이다. 중국은 화웨이를 앞세워 과연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 화웨이의 와신상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세계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를 정조준했다. 2018년 12월 캐나다 정부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했다. 화웨이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 뒤엔 미국이 있었다.

멍완저우는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의 딸이다. 멍 부회장은 2년 9개월 간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2021년 9월 풀려났다. 중국은 온갖 고초를 겪은 ‘영웅’ 멍 부회장을 전세기로 모셔왔다. 관영 CCTV는 귀국 장면을 생중계했다.

런정페이는 틈만 나면 ‘상감령’을 언급한다. 상감령(上甘嶺)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가을 미군과 중국군이 오성산 일대 저격능선과 삼각고지에서 벌인 전투를 말한다. 중국은 이를 상감령 전투라 부른다. 상감령은 대미 항전 승리의 상징으로 통한다. 오성산은 현재 철원 맞은 편 북한 땅에 속해 있다.

2019년 5월 관영 CCTV와 인터뷰에서 런 회장은 "지금은 (미국에) 얻어맞아 밀려 내려갈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 고지에 올라 결국 정상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선 "단기 돌격전이 아닌 장기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싸울수록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중국 언론 매체들은 "우리는 달러가 아니라 인재를 비축하고 있다"는 런 회장의 말을 일제히 보도했다.

런 회장은 인민해방군 통신 장교 출신이다. 미국은 늘 중국 공산당이 화웨이 뒤에 있다고 의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예 화웨이를 ‘스파이웨이’라고 불렀다. 미국은 화웨이 통신 장비의 사용을 금지했다. 나아가 한국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우방국 기업들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에 첨단 반도체 칩, 장비, 설계, 소프트웨어 등을 팔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다.

이런 난관을 뚫고 화웨이가 7나노미터 칩을 탑재한 새 휴대폰 모델을 내놨으니 중국이 흥분할 만도 하다.

◇ 중신궈지(SMIC)는 어떤 회사

‘메이트60 프로’ 휴대폰에 탑재된 7나노미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SMIC가 만든 ‘기린 9000s’로 확인됐다. 지난 2000년 상하이에 설립된 SMIC는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다. 파운드리는 다른 데서 반도체 설계를 넘겨받아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말한다. 대만 TSMC가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가 쓴 ‘칩 워’에 따르면 SMIC는 리처드 창이란 인물이 "골드만삭스, 모토로라, 도시바 같은 국제 투자자들로부터 끌어온 15억달러를 밑천 삼아 창업했다." 리처드 창은 중국 난징 출신이지만 대만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인물로,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창은 (SMIC에서) 쫓겨났고 민간 투자자들 역시 중국 정부에 지분을 내놓게 되었다. 2015년에는 중국 공업정보화부 전직 관료가 SMIC의 새로운 회장으로 지명되면서 SMIC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분명히 했다."

요컨대 ‘메이트60 프로’는 화웨이와 SMIC가 대미 결사항전 각오로 개발한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 반도체 굴기에 성공할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대만에서 열린 IT 박람회에서 "중국의 반도체 자립 능력이 충분하다"며 "중국을 얕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이번 기회를 활용해 자국 현지 기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계 미국인인 황 CEO는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외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에 부정적이다. "중국과의 칩 전쟁은 미국 기술 기업에 큰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을 제조하는 엔비디아는 AI의 시대로 총아로 떠오른 기업이다.

로이터통신은 5일 중국이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3000억위안(약 55조원) 규모의 국가 지원 투자 기금인 ‘중국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기술 개발은 연구개발(R&D) 자금 규모에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15년에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했다. 반도체 굴기가 핵심 과제 중 하나다.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지금으로선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긴 시야로 보면 중국이 그 방향으로 한발씩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 반도체 굴기 쉽지 않을 것

반도체는 설계, 장비, 소재, 생산 등 단계별 공급망이 서로 얽힌 대표적인 산업으로 꼽힌다. 어느 한 나라 또는 한 기업이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

대만 TSMC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 전 회장은 지난 8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과 반도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한·일·대만 반도체 동맹을 언급하며 "우리가 (반도체 공급망의) 급소(choke point)를 잘 통제하고 있다. 이 급소를 쥐고 있는 한 중국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밀러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 "여러 나라에 걸친 공급망을 지닌 분야에서 기술 독립은 언제나 허황된 꿈일 수밖에 없다. 기계장치부터 소프트웨어까지 공급망의 다양한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보유하지 못한 중국의 기술 독립은 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칩 워’)는 것이다.

밀러 교수는 대중 제재에 동참한 네덜란드 ASML 사례를 든다. ASML는 첨단 칩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독점 공급한다. 이 장비는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쓴다. "극자외선 시스템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인 레이저만 해도 완벽하게 구현된 45만7329개의 부품을 조립해야 만들어진다. 설령 그들(중국 스파이)이 ASML의 내부 전산망에 침입해 설계도를 다운받았다고 한들, 이토록 복잡한 기계는 파일 하나 내려받듯이 손쉽게 복사해서 붙여넣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틈날 때마다 ASML 경영진을 만나 극자외선 장비 공급에 공을 들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화웨이 쇼크’는 아니다

중국의 화웨이 ‘쾌거’는 냉정히 보면 그리 흥분할 일도 아니다. 파운드리 1위 TSMC와 2위 삼성전자는 이미 3나노미터 칩 시장을 두고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화웨이는 7나노미터 칩이다. 아직은 최첨단 기술력과 간격이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에 7나노미터 칩을 양산했다.

이번에 화웨이는 다시 미국을 자극했다. 당장 대중 강경파인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상무부는 화웨이와 SMIC에 대한 모든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대중 반도체 제재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재차 면밀히 살필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SK하이닉스는 화웨이 휴대폰 신제품에 자사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갔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랐다.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도입된 이후 화웨이와 더 이상 거래하지 않고 있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이어 "곧바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신고했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향후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반도체 기업들은 대중 거래에 한층 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이는 적어도 단기적으론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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