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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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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활유 기업의 변신은 무죄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07 11:49
발언하는 박상규 SK엔무브 사장

박상규 SK엔무브 사장이 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지크(ZIC) 브랜드 데이’ 행사에서 미래 비전과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기차가 대세가 되면 윤활유를 만드는 회사들은 뭘 먹고 살지? 걱정할 거 없다. 물론 전기차는 엔진오일이 필요 없다. 대신 모터와 배터리의 열을 식히는 냉각유가 필요하다. 자동차 기어 등 기계 사이의 마찰을 줄이는 윤활유도 여전히 필요하다.

윤활유 지크(ZIC)를 만드는 SK엔무브는 며칠전 ‘지크 브랜드 데이’ 행사를 가졌다. 여기서 박상규 사장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윤활유 수요가 꺾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전기차도 모터를 냉각하고 기어 마찰 저항을 줄이는 윤활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SK엔무브는 전력 효율화 시장을 선점해 미래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내연기관 시대의 연비 효율화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전력 효율화로 진화한 셈이다. 전력 효율화 시장은 오는 2040년 5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 각광받는 액침냉각 시장

전력 효율화 분야에서 요즘 핫 아이템은 액침냉각 시장이다. 액침(液浸)은 액체 곧 냉각유에 담근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Immersion Cooling이라고 한다. 데이터 센터를 예로 들어보자. 서버를 대량 가동하는 데이터 센터는 1년 365일 한겨울이다. 서버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줄기차게 가동하기 때문이다. 이를 공랭식이라 한다. 공기를 차갑게 해서 열을 식힌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랭식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에어컨 돌리는 비용이 만만찮다. 열을 식히는 효율도 썩 좋지 않다.

2010년대 중반 암호화폐(가상자산) 채굴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할 때라 너도나도 채굴에 뛰어들었다. 전력 소모가 큰 고사양 대용량 컴퓨터가 불티나게 팔렸다. 채굴용 컴퓨터는 전기 먹는 하마가 됐고, 컴퓨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도 골칫거리였다.

이를 계기로 액침냉각 기술이 새삼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데이터 센터 서버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냉각유 통에 통째로 푹 담그는 식이다. 액침냉각은 공랭식에 비해 냉각 효능이 탁월하다. 데이터 센터의 경우 전력 효율을 30% 이상 개선할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은 칩 크기를 줄이는 경쟁 대신 패키징(포장) 기술 향상에 힘을 쏟는다. 칩을 층층이 쌓으면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를 패키징 곧 후공정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10나노 칩이라도 쌓아서 연결하면 최첨단을 달리는 5나노칩도 당하지 못한다. 문제는 역시 발열이다.

냉각유는 전력을 보관하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에서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ESS는 잦은 화재가 걸림돌이다. 에너지를 저장한 배터리에 자주 불이 붙기 때문이다.

SK엔무브는 데이터 센터, ESS, 전기차용 배터리 등의 열관리를 위한 액침냉각 시장이 2020년 1조원 미만에서 2040년 42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자체 추산한다.

SK엔무브가 선보인 데이터센터 액침 냉각 시스템

SK엔무브 관계자가 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지크(ZIC) 브랜드 데이’ 행사에서 액침 냉각을 활용한 데이터센터 열관리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텔이 투자에 앞장

글로벌 IT 업체 중에선 미국 인텔이 액침냉각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인텔은 지난해 5월 액침 냉각유 기술 개발에 7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에 설립된 미국 GRC(Green Revolution Cooling)도 액침냉각 기술에 특화한 기업이다. SK엔무브는 지난해 GRC에 2500만달러(약 334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윤활유 경쟁사인 GS칼텍스는 2021년 전기차 전용 윤활유 ‘킥스(Kixx) EV’를 출시했다. 에쓰오일(S-Oil)은 작년 10월 ‘S-OIL 세븐 EV’를 내놨다.

디지털 시대에 제때 적응하지 못한 사례로 흔히 코닥을 든다. 코닥은 카메라 필름 시장을 지배했다.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아뿔싸,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적자생존을 말했다. 적응하지 못하면 그 생물은 도태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윤활유 기업들은 전기차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컴퓨터·배터리 열 관리는 미래 수익원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변신 노력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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