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곽인찬

paulpaoro@ek.kr

곽인찬기자 기사모음




현대차가 총대 멘 정년연장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01 09:42
2023090101000029000000392

▲현대자동차의 2023년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정년연장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조는 최장 64세까지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사진=연합뉴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인다. 8월24일 실시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노조는 89%가 찬성에 표를 던졌다. 올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단연 돋보이는 쟁점은 정년 연장이다. 노조는 정년을 최장 64세까지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노조원들은 정년 연장을 올해 임·단협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현재 법정 정년은 60세다.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는 점차 높아져 2033년 65세가 된다. 여기서 연금 크레바스(공백) 우려가 나온다.

또한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은 국가적 과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로 굴러떨어졌다. 정년 연장은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현대차에서 정년 연장은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 정부는 정년 연장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펴왔는지, 해외 사례는 어떤지 등을 살펴보자.


◇ 정년 연장 총대 멘 현대차


몇 년 전부터 정년 연장은 현대차 노사 협상의 단골 메뉴다. 일부 성과도 있다. 노사는 2018년 시니어 촉탁직 신설에 합의했다. 60세 정년을 맞은 직원은 1년 간 계약직으로 원래 하던 일을 더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니어 촉탁직은 임시방편이다. 노조는 아예 정년을 64세로 높일 것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그래야 국민연금 수령까지 소득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측도 고민이 깊다. 사실 정년 연장은 정부와 국회가 다루어야 할 국가적 과제다. 한 회사가 떠맡기에는 부담이 크다. 더구나 현대차는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대대적인 전환을 진행 중이다. 전기차는 기존 휘발류·경유 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품이 적고 생산이 간편한 편이다. 굳이 정년을 연장하면서까지 인력을 충원할 필요가 없다.

이 결과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노사 협상은 수년째 답보 상태다.


◇ 정부는 어떤 생각인가


전임 문재인 정부는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 문제를 다뤘다. 지난해 2월 4차 인구정책 TF는 "고령자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고 말했다. 계속고용제는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을 없애거나, 직원을 재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윤석열 정부도 계속고용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올 1월 정부는 ‘제4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고용고용부 장관은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 고령자 고용에 관한 최상위 체계라 할 수 있다.

기본계획은 ‘자율적 계속고용 지원 확대’를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 계속고용제를 도입한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재정 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기본계획은 우수 사례로 크라운제과와 한라시멘트 사례를 들었다. 크라운제과는 정년을 62세까지 연장(2016년)하고, 정년 후 3년 간 재고용을 보장했다. 한라시멘트는 노사 합의에 따라 정년 퇴직자 15명을 재고용(2021년)했고, 특정 공정 노하우를 갖춘 퇴직자 22명을 재고용(2022년)했다.

기본계획은 일정도 제시했다. 2023년 1분기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계속고용 논의체를 구성한 뒤, 2분기에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거쳐, 연말에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시간표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 간 정년 연장 논의는 기업 자율에 의한 바람직한 진전이다.


◇ 걸림돌은 없나


장애물이 없는 정책은 없다. 정년 연장의 최대 걸림돌은 임금피크제다. 노조는 임금피크제 없는, 곧 소득 감소 없는 정년 연장을 원한다. 회사는 인건비 부담을 내세워 임금피크제를 필수 조건으로 여긴다.

경사노위는 지난 7월에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늑장 발족시켰다. 하지만 노동계는 빠진 반쪽 출범이다. 한국노총은 정년 연장이 임금피크제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불참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적용된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관련법을 보면 이는 당연한 판결이다. 고용자고용촉진법은 1조(목적)에서 "이 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한다"고 못박았다. 비용 절감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기업들로선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 연장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걸림돌은 청년 일자리다. 지난 2016년부터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은 정년을 60세로 높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자 고용이 1명 증가할 때 청년 고용은 0.2명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금도 질 좋은 청년 일자리가 모자란다고 난리다. 현대차는 청년들이 서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이 마당에 정년이 연장돼 신규 채용이 줄면 청년층 불만은 불을 보듯 뻔하다.


◇ 임금체계 개편은 또다른 장벽


윤석열 정부는 계속고용제 도입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한묶음으로 다룬다. 사회적 논의의 핵심도 이 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직무급제 전환은 난관투성이다. 강성 노조가 자리잡은 대기업과 공기업은 호봉제가 지배적이다. 연공서열을 기초로 하는 호봉제 아래선 나이가 벼슬이다. 근무연수가 차면 절로 봉급이 오른다. 직무급제는 하는 일에 따라, 성과급제는 실적에 따라 연봉이 달라진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노조는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정년만 연장되길 바란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개혁 차원에서 호봉제를 직무급제로 바꾸려 한다. 윤 정부가 출범한 뒤 노·정 관계는 악화일로다. 이 마당에 직무급제 전환을 강행할 경우 충돌이 불가피하다.


◇ 정년 연장은 가야 할 길


현대차 노조는 귀족 노조로 불린다. 평균 연봉는 1억원 수준이다. 이런 회사가 정년까지 늘려달라고 파업에 나설 경우 ‘과욕’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꼭 현대차 노사가 아니라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생률을 고려하면 이미 선제 대응 타이밍을 놓쳤다고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에 그쳤다. 출생아 수가 25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처음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도는 유일한 나라다.

고령화 선도국인 일본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2006년 65세까지 고용확보 조치를 의무화했다. 이를 계기로 계속고용제가 널리 퍼졌다. 이어 2020년에는 근로자가 만 70세까지 일하기를 원할 경우 기업이 계속고용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여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아예 정년이 없다. 싱가포르는 법정 정년이 63세이지만 2030년까지 65세로 연장된다.

현대차 노사가 정년 연장에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정부는 이를 존중하면 된다. 그러나 정년 연장을 기업 자율에 맡기는 건 한계가 있다. 한국은 고령화·저출산 속도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나라다. 국가 경제의 지속성을 고려하면 정부가 앞장서고 국회가 이를 법령으로 뒷받침하는 게 정도다.


<경제칼럼니스트>

2023090101000029000000391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