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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을 접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8·18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외교안보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묻힌 게 있다. 바로 한·미·일 3국 재무장관 회담이다. 정상회의 공동성명(캠프 데이비드 정신)은 "(연례적인 3국 정상, 외교장관, 국방장관 및 국가안보보좌관 간 협의와) 아울러 우리는 첫 3국 재무장관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르면 올 10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사상 첫 3국 재무장관 회담이 열릴 수 있다. 세 나라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과제를 다뤄야 할지 등을 알아보자.
◇G7의 출발도 재무장관 회의
꼭 50년 전 조지 슐츠 미국 재무장관은 서독(현 독일),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을 백악관 지하 도서관에서 만났다. 비공식 모임이었지만 멤버가 화려했다. 서독 헬무트 슈미트 재무장관은 나중에 총리가 된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재무장관은 얼마 뒤 대통령이 된다. 이 모임을 ‘도서관 그룹’이라 부른다.
같은 해 슐츠는 4개국에 일본을 더해 G5 재무장관 회담을 가졌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은 다섯나라 정상이 모여 친교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1975년 프랑스가 첫 G6 정상회의를 주최했다. G5에 이탈리아가 추가되면서 G6가 됐다. 나중에 캐나다가 그룹에 포함됐다. 결국 현재 우리가 보는 G7 정상회의는 G4 재무장관 회담이 출발점이다.
◇역사를 바꾼 플라자 합의
1980년대 초 미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1979년에 터진 이란혁명의 여파다.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무시무시한 고금리 정책을 폈다. 한때 연방기금금리는 20%에 달했다. 금리가 치솟자 달러는 강세로 치달았다. 자동차 등 제조업체와 곡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달러 강세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강달러로 수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가뜩이나 좋지 않던 미국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환율을 인위적으로 손보기로 했다.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은 1985년 9월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에서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을 만났다. 일본에선 다케시타 노보루 재무장관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폭적인 달러 가치 절하에 합의했다. 직후 일본 엔화 가치는 급등했다. 한때 달러당 180엔에 육박하던 엔화 환율은 120엔대로 떨어졌다. 이를 플라자 합의라 한다.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부동산 등 자산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결국 5개국 재무장관들이 합의한 플라자 합의는 일본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상설 통화스와프 구축이 과제
지난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8년만에 통화스와프 복원에 합의했다. 100억달러 규모다.
통화스와프는 위기 때 꺼내쓰는 비상금 통장이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서 한때 수백억 달러 규모이던 한·일 통화스와프는 2015년 제로가 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순풍을 타자 자연스럽게 통화스와프도 재개됐다.
경제 위기 때 가장 확실한 안전판은 미국 연준과 맺은 통화스와프다. 연준은 기축통화 달러를 이론상 무한대로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은 연준과 300억달러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금융시장에서 원화는 안정세로 돌아섰다. 2020년 코로나 위기 때도 한국은 600억달러 통화스와프 협정을 연준과 체결했다. 이 역시 외환시장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준은 위기가 끝나면 곧바로 협정을 종료한다. 600억달러 스와프는 2021년 12월에 끝났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연준은 2013년부터 캐나다,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스위스 5개국과 상설 통화스와프 라인을 구축했다. 상설 라인을 가동하면 위기 때 연준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으려 발을 동동 구를 필요가 없다.
물론 5개국은 특수성이 있다. 바로 이웃한 캐나다는 최대 교역국 중 한 곳이고, 유로·엔·파운드·스위스프랑은 무역 결제에서 국제통화 대우를 받는다. 현실적으로 원화는 아직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상설 통화스와프 라인 구축은 한국 경제 안정에 꼭 필요한 요소다. 작년 7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방한했을 때도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양국은 필요하면 외화 유동성 공급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3국 재무장관 회의 개최를 명시한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상기하면 미국이 그만큼 한국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 라인을 가동중이다. 한국은 그 위에 올라타면 된다.
통화스와프는 미국 재무부가 아니라 연준 소관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옐런 장관은 직전 연준 의장 출신이다. 적어도 가교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는 한·미 통화스와프 상설 라인을 구축하는 데 다시 없는 기회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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