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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가 뭐길래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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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은 9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에서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하고 다음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가 3국 협력의 역사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외교부가 10일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외교부 제공]


오는 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린다. 세 나라 정상이 다자회의 무대가 아니라 이번처럼 따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대한 것도 처음이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캠프 데이비드에 처음 초대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번째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양자 회담이었고, 윤 대통령은 3자 회담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지난 80여년 간 캠프 데이비드는 단순히 대통령 별장을 넘어 역사를 만드는 현장이 됐다. 캠프 데이비드는 어떤 곳이고, 3자 회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등을 살펴보자.

◇ 캠프 데이비드는 미 국방부 자산

만인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캠프 데이비드의 소유주(Owner)는 미 국방부다. 운영자는 미 해군(US Navy)이다. 지금도 캠프 운영 인력을 해군과 해병대가 제공한다. 정식 명칭은 ‘서먼트 해군 지원 시설’(Naval Support Facility Thurmont)이다. 서먼트는 별장 근처 마을 이름이다.

캠프 데이비드는 메릴랜드주 프레데릭 카운티에 있는 캐톡틴 산악공원에 둥지를 틀었다. 수도 워싱턴DC에서 북서쪽으로 62마일(약 100km) 떨어진 곳이다. 헬기를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다. 넓이는 50만6000㎡, 약 15만3000평 규모다.

캠프 데이비드는 대공황 대응책으로 나온 뉴딜의 산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대적인 공공 토목 공사를 일으켰고, 연방정부 직원과 가족의 휴양지로 캠프 하이 캐톡틴(Hi-Catoctin·캠프 데이비드의 원래 이름)을 지었다. 하이-캐톡틴은 1935년 착공했고 3년 뒤 준공됐다.

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는 자신의 요트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경호팀은 이를 불안하게 여겼다. 언제든 독일 U보트 잠수함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42년 루스벨트는 하이-캐톡틴을 대통령 별장으로 전환하면서 이름을 샹그릴라로 바꿨다. 샹그릴라는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에 나오는 이상향이다. 이후 샹그릴라(훗날 캠프 데이비드)는 군인들이 지키는 대통령 별장 겸 요새가 됐다.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아버지와 손자를 기리는 뜻에서 캠프 데이비드로 이름을 바꿨다. 아버지의 이름은 데이비드 제이콥 아이젠하워, 외동 손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아이젠하워다.

◇ 역사의 현장이 된 별장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3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를 샹그릴라에 초대했다. 외국 정상이 샹그릴라에 초청을 받은 것은 처칠이 처음이다. 이때 두 사람은 이듬해 6월에 있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구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처칠은 루스벨트와 낚시도 같이 가고 마을 카페에 들러 맥주도 마시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1959년 9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를 국빈으로 초청했다. 소련 지도자로선 첫 국빈 방문이었다. 흐루쇼프는 13일 간 머물렀고, 마지막 이틀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지냈다.

소련은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쇼크에 빠졌다. 이 즈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두고 체제 우월성 논쟁이 벌어졌다. 흐루쇼프의 방미는 이런 분위기 아래서 이뤄졌다.

지미 카터는 캠프 데이비드에 가장 짙은 역사의 흔적을 남겼다. 1978년 9월 카터는 앙숙이던 이집트 안와르 알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 메나헴 베긴 총리를 별장으로 초대했다. 항구적인 중동 평화를 위해선 양국 간 화해가 절실했다.

사다트와 베긴은 열이틀에 걸친 비밀 협상 끝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맺었다. 양국 협상단은 숲속 별장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견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 이 일로 사다트와 베긴은 1978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이 협정을 기초로 이듬해인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평화협정을 맺었다.

원래 카터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캠프 데이비드 별장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카터의 최대 치적이 나왔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어느 누구보다 캠프 데이비드 별장을 애용했다. 방문 횟수가 재임 8년 간 189차례에 이른다. 1984년엔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를 초대했다.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92년 딸 결혼식을 캠프 데이비드에서 치렀다. 별장 결혼식은 이때가 처음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7월 이스라엘 에후드 바락 총리와 팔레스타인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을 별장으로 불러 정상회담을 주선했다. 물론 카터 시절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모델이 됐다. 그러나 2주에 걸친 협상에도 불구하고 성과 도출에는 실패했다.

◇ 2008년 한국과도 인연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은 재임 8년 간 캠프 데이비드를 총 149차례, 487일 간이나 찾았다. 2001년 9·11 사태 뒤에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한 각료회의를 개최했다. 맹방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네 차례나 초대하는 등 정상 간 친목을 다지는 장소로 별장을 적극 활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골프 카트를 타고 별장 곳곳을 둘러봤다. 한국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만큼 당시 한·미 관계가 긴밀했다는 뜻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G8(주요 8개국) 정상회의를 별장에서 열었다. 이때만 해도 러시아는 G8 멤버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아니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대신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6월 G7 정상회의 장소로 캠프 데이비드를 골랐다. 그러나 회의는 때마침 기승을 부린 코로나 팬데믹 탓에 취소됐다. 갑부인 트럼프는 국가 소유인 캠프 데이비드보다 개인 소유인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를 선호했다.

◇ 관전 포인트는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논의(discussion of historic proportions)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논의할 내용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박진 외교장관은 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3국 협력의 역사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외교부가 10일 전했다. 양국 고위관리가 역사적 의미, 역사적 전기를 강조한 게 눈에 띈다.

3국의 공통과제인 북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책은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덧붙여 북한에 대한 가상자산(암호화폐) 해킹 차단책 등도 논의될 전망이다.

원전 오염수 방류는 민감한 이슈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방류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으로선 불편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국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대중 견제론도 수위에 따라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다. 중국은 벌써부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며칠 전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미국은 항상 동북아에 ‘작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3각 군사동맹을 만들고 싶어한다"며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한국과 일본에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은 어김없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 국익 외교는 불변

캠프 데이비드 초대장은 미국이 핵심 우방국 정상을 극진히 예우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세계 최강국 대통령과 편안한 복장으로 만나서 숲길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는 게 나쁠 건 없다. 국가 위상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다만 회담 장소가 백악관이든 별장이든 변치 않는 원칙은 국익이다.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지나친 양보를 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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