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주요 8개국(G8) 멤버가 될 수 있을까? 쉽진 않을 것 같다. G7은 서방 선진국 중에서도 알짜만 모였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로 구성된 G7은 말그대로 프리미엄 기득권 클럽이다. 이들이 쉽게 문을 열 리가 없다.
그렇다고 문이 아예 닫힌 건 아니다. 원래 G7은 G4에서 출발했다. 이어G5→G6→G7→G8→G7의 과정을 거쳤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 경제국(세계은행·2022년)이다. 인구도 5000만명이 넘고 국방력도 탄탄하다.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가치도 공유한다. 만약 G7이 회원국을 신규 모집한다면 한국은 분명 1순위다.
제49차 G7 정상회의가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초청장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은 정식멤버가 아닌 손님일 뿐이다. 마침 한·일 관계가 대화의 물꼬를 텄고, 일본이 올해 호스트 역할을 한다. 히로시마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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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2일 일본 니가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과 환담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기획재정부 제공] 사진=연합뉴스 |
◇ 원래 출발은 G4 재무장관 회의
1973년 3월 조지 슐츠 미국 재무장관이 서독(현 독일),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과 워싱턴에서 비공식 모임을 가졌다. 장소는 백악관 지하 도서관. G4의 역사적 태동이다. 이 모임을 ‘도서관 그룹’(Library Group)이라고 불렀다. 당시 서독 재무장관이 헬무트 슈미트, 프랑스 재무장관이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었다.
같은 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슐츠 장관은 일본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회원국들의 동의 아래 G5, 곧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재무장관의 비공식 모임이 출범했다.
1974년 G5 국가 정상이 대거 교체됐다. 프랑스에선 퐁피두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했고 그 뒤를 지스카르 데스탱이 이었다. 미국은 닉슨 대통령, 서독은 빌리 브란트 총리, 일본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스캔들에 휘말려 일제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은 이듬해 서로 얼굴이나 익히자며 4개국 지도자들에게 회동을 제안했다.
1975년 11월 마침내 프랑스 파리에서 제1차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때 이탈리아가 정회원국이 되면서 G5가 G6로 확대됐다. 1차 오일쇼크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G6 정상회의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왜냐하면 이듬해인 1976년 캐나다가 정회원국으로 입성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G7의 시대가 열렸다.
◇ 러시아도 한때 G8
1994년 이탈리아 나폴리 정상회의부터 러시아가 참석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G7 지도자들과 개별 모임을 가졌다. 이때를 통상 ‘G7+1’이라 부른다.
1997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덴버 정상회의에 초대하면서 러시아는 정회원국이 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강제 병합을 이유로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했다. G8은 다시 G7으로 돌아갔고, 이 체제는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 트럼프는 한국 편?
2020년 G7 정상회의는 당초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6월에 열릴 예정이었다. 호스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G7의 문호를 넓히려고 했다. 그는 "G7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절히 대표한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이는 아주 낡은 국가 모임"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를 더해 G11으로 확대하거나 또는 브라질까지 더해 G12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초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G7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세계의 외교 질서가 낡은 체제인 G7에서 G11 또는 G12로 전환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매버릭’ 트럼프는 G7 정상회의에서 늘 겉돌았다. 다른 나라 정상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트럼프는 낡은 G7을 확대 개편해 반중(反中) 글로벌 연대를 구축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회원국들은 특히 러시아의 재가입에 손사래를 쳤다. 트럼프의 계획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때마침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2020년 정상회의는 취소됐다.
◇ 윤석열 정부 움직임은
윤석열 대통령은 히로시마 정상회의를 전후로 각국 정상을 연쇄적으로 만나는 ‘슈퍼위크’를 갖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6일 방한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1일 한국을 찾는다. 22일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정상회담 일정이 잡혀 있다. 히로시마에선 기시다 총리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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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6일 오후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트뤼도 총리는 한·캐나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4월10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G7 주한 대사들을 만찬에 초청했다. 외교부가 G7 대사들만 따로 불러 만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장관은 만찬사에서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책임과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 뒤 박 장관은 국민의힘 의원 모임 특강에서 "대한민국이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8강에 와있다고 생각한다"며 이틀전 주한 G7 대사들과 진행한 만찬에서 ‘G8을 위한 건배’를 했다고 전했다.
4월초엔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대행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공동으로 개최한 웨비나에서 한국이 G8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미국이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신호도 감지된다. 미국 초당파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은 2014년부터 D-10 전략포럼을 열고 있다. D-10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갖춘 선진 민주국가를 말한다. D-10은 G7에 한국과 호주, 유럽연합(EU)를 더한 것이다.
◇ 갈 길은 멀지만
중앙일보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최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대담에서 한국의 G8 합류에 대해 "지금까지 G7 내에서 멤버 확대에 대해 논의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찬성이고 일본은 반대라는 구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똑부러진 반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찬성도 아니다.
일본의 본심은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G7 확대를 거론할 때 드러났다. 당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G7 틀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에 한국의 참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한국이 신규회원이 되면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존재감이 떨어질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G7 개편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베단트 파텔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1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히로시마)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원국 변화와 관련해 어떤 논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며 "물론 우리는 회의가 열리는 것을 우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가입은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수다. 그 중에서도 세계 최강국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G8의 꿈은 꿈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1996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2008년 시작된 G20 정상회의는 오리지널 회원국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대미, 대일 관계는 한층 단단해졌다. G8은 서방 선진국 이너서클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히로시마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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