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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 모습. 사진=김기령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 기자] 최근 일명 ‘빌라왕’ 사건으로 수도권 전역에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가 만연한 가운데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지원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세입자 피해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추가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테크 ‘임대차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보증사고는 총 852건으로 피해금액만 1862억20만원에 달한다.
이는 전월 전세보증사고 건수(704건)보다 많은 수준이며 피해금액(1526억2455만원) 역시 300억원 넘게 증가했다. 사고율도 지난 10월 4.9%에서 지난달 5.2%로 늘어났다.
사고 건수가 증가함에 따라 임차인이 전세금을 우선 돌려 받을 수 있는 ‘임차인등기명령’ 신청 건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지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719건으로 전년 동기(2954건)보다 25.9% 증가했다. 연간 기준 최고치를 돌파한 수준이다. 신청 건수는 지난 1월 202건에 불과했으나 지난달 580건으로 급증했다.
임차인이 전세금을 돌려 받지 못하고 이주할 경우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신청을 하면 임차된 주택에 살지 않고 주민등록을 옮기더라도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고 전세금을 우선 돌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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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마련된 HUG 전세피해지원센터. 사진=김기령 기자 |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에서도 전세피해지원센터를 개소하는 등 지원에 힘쓰고 있다. 정부는 올해 들어 전세 피해가 급증하고 전세가율이 타 지역 대비 높게 집계된 서울 강서구에 지난 9월말 시범적으로 지원센터를 첫 개소해 운영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어 최근 전세사기 피해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에도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8일 인천 미추홀구의 피해 현장을 찾아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 세입자 지원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원 장관은 간담회에서 "수도권에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을 첫 대상으로 삼아 구체적인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 설립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비롯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등 임차인을 보호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100% 반환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세입자들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소유한 빌라왕 A씨가 지난 10월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A씨 소유 주택의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 당시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집주인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할 수가 없어 반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도 자율적으로 피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화곡동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전세사기 전과가 있거나 우려가 있는 집주인 목록을 작성·공유하고 있다. 화곡동 A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일명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등기부등본을 뗐을 때 이 리스트에 있는 집주인 이름이 보이면 계약을 절대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끼리 이렇게라도 해서 전세 피해자들을 막고 흉흉한 시장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만큼이나 세입자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전세 피해는 대체로 집값 하락에 따른 여파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하락 시기에는 소비자들 스스로 항상 주의 의무를 기울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과거에는 선순위채권과 전세가를 합했을 때 보통 80% 정도일 때 안전하다고 봤지만 최근에는 60~70%까지 낮아야 안전하게 계약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giryeo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