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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지주.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금융당국이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현명한 판단’을 압박하면서 우리금융그룹 이사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미 금융위원회의 문책경고 제재 의결에 이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 등을 비춰봤을 때 금융당국은 손 회장에 확실한 경고를 보냈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분석이다.
이사회 입장에서는 우리금융그룹이 각종 난관을 딛고 오랜 숙원인 완전민영화를 달성한 상황에서 당국의 압박으로 CEO를 교체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손 회장이 DLF 사태에 이어 라임사태까지 금융당국과 ‘정면대결’을 택할 경우 경영 안정성을 답보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 "현명한 판단 내려라" 메시지 노골화한 당국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 회장은 DLF 사태, 라임 사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받았다. 해당 사태로 인한 중징계 조치는 손 회장의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구체적인 시기를 보면 라임 사태와 DLF 사태의 중징계 조치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DLF 사태의 경우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2019년 12월 30일 일찌감치 손 회장을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손 회장의 임기가 2020년 3월 정기주주총회까지이나, 당시 우리금융지주 출범 초기인 만큼 손 회장이 경영에 더욱 집중하고 조직 안정화를 거둘 수 있도록 힘을 실은 것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2020년 2월 3일 손 회장에 대한 문책경고 제재를 최종 결재했지만, 이사회는 금융위원회 절차가 남아있는 점을 고려할 때 기존에 결정된 절차와 일정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손 회장은 이러한 믿음에 힘입어 같은 해 3월 4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제재안이 확정됐음에도 법원의 징계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 3월 25일 연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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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
이렇듯 DLF 사태 중징계만 해도 당시 CEO가 내부통제 부실을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고, 우리금융지주 지주사 출범 초기라는 특수성도 있었던 만큼 이사회도 손 회장을 지지하는 것이 크게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라임사태의 경우 문책경고를 내린 시기를 고려했을 때 사실상 금융당국이 손 회장, 이사회의 운신의 폭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작년 4월 라임사태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내렸다. 금융위는 그간 해당 제재안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다가 이달 9일 정례회의에서 손 회장에 대한 문책경고 조치를 의결했다. 문책경고는 3년간 금융권 신규 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다. 문책경고를 받은 CEO는 남은 임기는 마칠 수 있지만 연임은 불가능하다.
손 회장의 임기 만료를 4개월간 앞둔 시점에서 금융위원회가 중징계 조치를 의결한 것은 CEO 연임의 키를 쥐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에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과거 소송(DLF 제재 취소소송) 시절과 달리 지금은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 금융기관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 당사자(손 회장)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은 당국의 기조를 노골화한 메시지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는 지배구조상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을 내려 보내기 쉬운 점을 이용해 사실상 손 회장에 연임은 하지 말라는 뜻을 피력한 것 아니겠냐"고 짚었다.
◇ 금융권 "연이은 중징계 조치, 법적 판단 구해야" 무게
이러한 요인들을 모두 감안해도 금융권 안팎에서는 손 회장이 다시 한 번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진다. 손 회장이 이번 중징계 건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우리은행이 라임 펀드에 대한 배상 조치 등 소비자 피해 회복 노력에 최선을 다한 사례를 모두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당국의 제재 배경을 두고 난무하는 외압설을 잠재우고, 징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손 회장이 소송에 나서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나 우리금융이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완전민영화를 작년 말에나 겨우 달성한 상황에서 당국의 무언의 압력으로 인해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실제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12월 우리금융 지분 9.33%를 매각한 데 이어 지난 5월 추가로 2.33%를 매각했다. 우리금융에 대한 공적자금 회수금액은 총 12조8658억원으로, 당초 예보가 지원한 원금(12조7663억원) 대비 약 1000억원을 초과로 회수했다. 현재 예보의 우리금융 잔여 지분은 1.29%에 불과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중징계 조치를 CEO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정답인지는 의문"이라며 "이번 징계 조치가 법적으로 타당한지 등은 CEO 입장에서도 충분히 따져볼 수 있지 않나"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만일 손 회장이 당국을 상대로 또 다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이것이 우리금융 경영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즉 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차기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을 선정할 때 손 회장의 경영성과, 역량뿐만 아니라 잇단 법적리스크로 인한 향후 경영안정성 등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특히나 우리금융은 증권사 인수합병(M&A)이 중차대한 과제로 남아있는데, 손 회장과 감독원 간에 잇단 소송으로 정상적인 경영에도 차질이 빚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만일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당국이 우리금융의 행보에 어깃장을 놓을 경우 이러한 행보는 ‘금융사 길들이기’와 같다는 반론도 있다. 또 현재 손 회장 입장에서는 당국과의 법적 다툼에서 최종 승소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국의 메시지로 (이사회가) 다방면으로 경영 능력이 검증된 현 CEO를 교체하는 것이 또 다른 관치의 증거 아니겠냐"라며 "소송은 개인 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이고, 이사회는 이사회 본연의 책무에 맞게 차기 우리금융지주를 이끌어갈 최선의 후보군을 추천 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밝혔다.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