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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ATM 전락’ 한화토탈에너지스·여천NCC, 배당 성향 낮출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11 06:30

석화 불황 속 신사업 투자금 마련에 합작사 재무 건전성 외면
여천NCC, 8월 디폴트 위기 자초…‘고배당의 역설’ 증명

한화그룹 CI. 사진=박규빈 기자

▲한화그룹 CI. 사진=박규빈 기자

한화그룹의 핵심 석유화학 계열사인 한화토탈에너지스와 여천NCC가 그룹의 신사업 투자를 위한 '현금 인출기(ATM)'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여천NCC는 2022년부터 본격화된 석유화학 업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익을 넘어서는 과도한 배당 정책을 유지하다 지난 8월 채무 불이행(디폴트) 직전의 위기까지 내몰렸다. 그룹의 야심 찬 사업 재편 이면에 가려졌던 합작사들의 재무적 희생이 수면 위로 드러나 향후 두 회사의 배당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관련 기업들은 중국발 대규모 공급 과잉으로 시작된 구조적 불황에 시달리고있다.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지분을 50%씩 보유한 여천NCC는 지난달 만기가 도래한 3100억원 상당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위기의 뿌리는 수년간 이어진 비정상적인 고배당 정책에 있다.


여천NCC는 1999년 설립 이후 2020년까지 총 4조43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두 모회사에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특히 저유가와 중국 수요 증가로 호황의 정점을 찍었던 2017년 영업이익 1조124억원을 낸 이후 배당 정책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2018년에는 4568억원으로 집계된 당기 순이익을 훌쩍 뛰어넘는 7400억 원을 배당해 162%라는 경이로운 배당 성향을 기록했다.


이러한 '묻지마 배당'의 대가는 참혹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17년 4182억원이었으나 2018년 말 회사의 132억원으로 곤두박질쳤고, 차입금은 2017년 3661억원에서 2020년 1조1103억원으로 3배 가량 급증했다. 불황에 대비한 '전시 자금'을 쌓기는커녕 빚을 내 배당 잔치를 벌인 셈이다. 결국 2022년부터 3년 간 누적 8200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하자 회사의 재무 구조는 급격히 무너졌다.




부채비율은 2022년 6월 217.88%에서 올해 6월 338.04%까지 치솟았고, 2023년 말 현금성 자산은 1억 원도 채 남지 않았다. 때문에 한화그룹의 합작 계열사 여천NCC의 위기는 단순한 업황 부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예고된 재앙'에 가까웠다는 지적이다.


한화토탈에너지스 역시 그룹의 핵심 '캐시 카우'였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1조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그룹의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했다. 2021년에는 당기 순이익 6480억 원 중 99.7%에 달하는 6460억원을 한화임팩트와 토탈에너지스에 배당했다. 이 배당금은 '오너 3형제 →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한화토탈'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를 통해 그룹의 신사업 투자와 지배력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무리한 현금 확보 전략의 배경에는 한화그룹의 거대한 사업 전환이 있다. 한화그룹은 2022년 이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에 2조원을 투입하고, 북미 태양광 설비에 수조 원을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한화솔루션의 순차입금은 2022년 말 5조원 미만에서 올해 2분기 10조원을 상회했고 그룹 전체는 올해에만 역대 최대인 3조5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석화 합작사들로부터의 배당금은 부채 증가 없이 신사업에 투입할 수 있는 절실한 자금이었던 셈이다.


여천NCC의 위기 상황에서 DL케미칼은 결국 추가 자금 지원을 하긴 했지만 자구책부터 마련하라는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고, 양사는 1006억 원의 국세청 추징금 책임을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이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한화토탈의 파트너는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스로, 이곳 역시 50대 50으로 지분을 소유한 지배 구조로 이뤄져있고, 고배당 성향을 고수해왔다. 한화임팩트와 토탈에너지스는 특히 실적이 부진했던 2021년과 2022년에도 각각 2625억원, 441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배당금을 수취했고, 배당 성향은 99.7%에 달했다.


양대 주주사의 현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러한 정책은 현재의 불황기에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내 유보금을 고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순손실이 발생한 탓에 2023년부터 배당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회사의 자본 기반을 약화시킨 뒤여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한화토탈에너지스가 계획했던 설비 투자(CAPEX)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위기 탈출을 위한 투자 여력을 스스로 제약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는 주주들의 단기적 현금 확보 요구와 합작사 자체의 장기적 전략적 필요가 충돌하며 발생한 구조적 취약점이라는 지적이다.


여천NCC 사태는 한화그룹에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당장 여천NCC는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하므로 향후 3~5년간 배당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한화토탈 역시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과거와 같은 100%에 육박하는 배당 성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미래를 위해 당장의 캐시 카우를 무너뜨리는 전략의 위험성이 확인된 이상 한화그룹의 자금 조달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한화그룹 관계자는 “석화업계 분위기가 매우 좋았을 때에는 영업이익이 남기 때문에 주주에 대한 배당을 하는 것일 뿐, 계열사를 현금 인출 수단으로 쓴 건 아니었다"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보니 배당을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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