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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
지난달 16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프레이션 감축법(IRA)의 국내 파장이 심각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이 법은 미국 차원에서 자국 논리로 첨단 기술에 대한 주도권과 자국 영토로 연구개발과 생산을 집중시키는 전략이다.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산업적 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동차 분야의 경우 미래 먹거리인 전기자동차를 중심으로 미국 시장에서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결과가 우려된다.
약 3개월 전 바이든 대통령의 내한 당시 국내 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호응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언이 허언이 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내한은 ‘이재용으로 시작하여 정의선으로 끝났다’고 언급될 정도로 국내 대표 기업의 투자를 자국으로 유치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마지막 일정에서 현대차 그룹 정의선회장과 약 14조원에 이르는 미국 투자 발표가 있었고 바이든 대통령은 "투자결정에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폭적인 지원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번 법이 시행되면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기업이 바로 현대차그룹이 됐다. 즉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전 기종에 대해 차량 1대당 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서 타사 경쟁차 대비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다. 벌써부터 판매 감소율이 두자릿수에 이르면서 미국 시장에서 비상이 걸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과 다르게 도움은 커녕 뒷통수를 때린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내에 판매되는 친환경차 대상 약 221개 기종 중 약 71개 차종이 보조금 대상에 선정되었고 이 중 미국차종이 약 80%를 차지했다. 자국 차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보조금을 주면서 앞서 자국 산업에 대해 노골적인 지원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보다 더한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법안이 자유무역협정(FTA) 기조를 무너뜨리는 편협된 정책이라는 것이고 향후 이 법안 등과 같은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국 중심의 심각한 법안이 각 지역에서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유사한 법안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경우 FTA 기조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우리의 수출기조 기반은 무너질 수 있어서 더욱 우려가 크다. 이번 법안에 대한 대책도 필수적이지만 큰 그림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산학연관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법안에 대해 정부는 방미 활동을 통해 법의 특례조항 등을 통해 최소한 유예기간이라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이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법안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미국도 알지만 표를 의식한 행보에 대한 후퇴는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통령 서명 직후 즉시 발효는 비상 시에 이루어지는 예외적 조치지만 이번과 같은 즉시 발효는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을 상대로 FTA의 위반의 문제점과 즉시 발효의 무효성을 설득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경제계, 심지어 일반 국민들도 미국의 부당성에 대한 반발로 반미 정서가 커지고 있음을 미국에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지난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미국의 정책에 호응하면서 힘을 모아주는 상황에서 이런 조치가 갖는 파장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입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내의 반미 기조 확대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준다는 것을 미국측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번 미국의 법안통과에 대하여 상호호혜의 일환으로 우리도 같은 법안으로 맞서서 미국의 국내 진입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정면 대결은 피해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다만 미국과 같은 자국 중심의 보조금 정책을 참조하고 해외 수입차에 혜택이 크게 간 보조금 정책을 고민하여 우리 중심으로 바꾸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제조건에는 FTA 기조가 흔들리지 않고 국제 관례를 어기지 않는 잘 만들어진 제도적 고민이 더욱 중요하다. 미국과 같은 노골적인 편협된 법안은 절대로 안된다는 뜻이다.
이번 사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뼈아프다. 일본 등과 달리 공식적인 로비스트가 없다 보니 미국 정가의 내부적인 정보 입수나 조치가 없어서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전기차에서 우리보다 약 2~3년 뒤진 일본이 격차를 좁힐 기회를 얻게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번 법안 이전에 진행되었던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은 미국 내의 자동차 제작사의 노조가 없으면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는 법안으로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진행된 법안이었으나 현재 이 법안은 없어지고 축소된 이번 IRA라는 법안이 등장한 것이다. 일본 등의 경우 미국 토요타 공장 등에 노조가 없어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컸었는데 로비를 통하여 BBB 법안의 무효화에 성공한 것이다. 결국 이번 법안의 최대 피해자는 대한민국이고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이 되고 말았다.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를 중심으로 민관이 최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동시에 현대차 그룹도 미국 내에서의 전기차 생산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노조의 발목잡기가 없어야 함은 당연하다.
앞으로 더욱 심각한 규제로 인한 글로벌 시장의 악재가 등장할 가능성이 큰 만큼 더욱 만반의 준비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틀을 바꾸는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