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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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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안전규제는 규제혁신 성역인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9.01 10:41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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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칭기스칸의 책사인 야율초재의 명언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안전법이 하나씩 생겨나는 우리나라 현실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지난 6월 윤석열 정부는 정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규제를 혁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강한 규제혁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안전규제의 특징을 잘 몰라서 그런지 규제혁신 대상에서 안전규제는 제외하고 있다. 과연 올바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름지기 규제는 실효성과 품질을 확보하여야 한다. 규제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안전규제도 규제혁신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안전규제라고 하더라도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규제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안전규제는 ‘고비용 저효과’ 규제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안전을 확보하기는커녕 안전확보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적지 않다. 특히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안전규제는 실효성을 따지지 않고 졸속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어느새 안전규제는 공무원의 조직과 권한 확대를 위한 도구로 고착화되고 말았다. 대통령 위에 공무원이 있다는 말이 공무원의 ‘묻지마’ 규제에 대한 집착을 웅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공무원들에게는 규제는 곧 권력이자 무기이다. 이러한 점은 안전규제도 결코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안전규제는 산업현장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 행정기관의 입장에서 손쉬운 답을 찾기 위해 ‘공무원의, 공무원에 의한, 공무원을 위한’ 규제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결과이다. 다른 규제와 달리 ‘안전규제는 선(善)’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맹목적인 안전규제는 어느 사이에 관료주의 위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안전관계 법과 집행기관이 난립되어 있는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규제가 서로 중복되고 충돌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규제의 준수 여건을 조성하거나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일보다는 규제를 추가하고 강화하는 일에 혈안이었다. 안전규제가 수범자로부터 많은 비난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된 이유이다.

예측 가능성도 없고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을 악법이라고 한다. 악법이야말로 가장 나쁜 규제에 해당한다. 안전분야에도 이론적으로 악법적인 요소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도 나쁜 규제가 곳곳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도급작업에 대한 규제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지난 정부에서 안전규제와 공공기관 안전인력을 대폭 확대했음에도, 사망재해자 수가 별다른 감소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안전규제의 품질이 불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안전인력은 근로자 1만명 기준으로 미국의 약 8배, 일본의 약 4배에 이를 정도로 비대한 상태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전규제를 유지하려 한다. 안전규제는 다른 규제와 마찬가지로 그 속성상 생명력과 번식력이 매우 강해 또 다른 규제를 낳는다. 불합리한 안전규제일수록 법집행을 자의적으로 할 수 있어 집행기관의 규제에 대한 집착과 저항이 집요하다.

법령보다 더 고질적인 병폐가 법적 근거 없는 행정지침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규제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림자 규제’이지만 그 폐해는 법령 자체 못지않게 심각하다. 행정기관이 행정편의적으로 만들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행정지침 왕국이라고 할 정도로 법적 근거 없는 행정지침이 안전규제에서 남발되었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이 문제는 아직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안전규제도 합리성과 실행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기준이다. 이를 무시한 안전규제는 규제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안전규제를 규제혁신의 성역으로 남겨두면 실효성 없는 불량 안전규제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난마처럼 꼬여 있는 안전규제의 혁신 없이는 재해예방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윤석열 정부는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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