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우리나라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의 순배출량 제로를 의미하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에너지소비의 80%가 넘는 석유·석탄·천연가스 거의 전부를 30년 내에 원자력·재생에너지와 같은 무탄소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 현재의 기술 수준·경제구조의 특성·짧은 기간 등을 감안하면 거의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지난 정부의 핵심 에너지정책이었던 탈원전까지 가세하면 궁극적으로 탄소에너지를 재생에너지만으로 대체해야하므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실현가능성의 한계를 정해주는 제약조건 즉 기술제약·예산제약·시간제약 등을 고려한 흔적을 도대체 찾기 어렵다. 당연히 제약조건을 무시할수록 실현가능성은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간 경과와 함께 제약조건은 완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실현가능성이 담보된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거추장스러운 각종 제약조건이 단기간에 극적으로 제거될 거라는 경로 파괴적 낙관론에 빠진 나머지, 실현 불가능한 공상과학 소설과 같은 계획이 되고 말았다.
가령 탈원전을 전제로 수립한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30%에 이르게 되면, 재생에너지의 변동폭이 일평균 수요 전망치 64GW와 거의 같아져 LNG발전은 물론 원전과 석탄발전과 같은 기저전원마저 대규모 감발과 증발이 수시로 요구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원전과 석탄발전의 기술적 제약 상 불가능한 계통 운영방식이다.
당연히 재생에너지의 대규모 변동성을 흡수할 에너지저장장치, 수소, 적극적 수요관리 등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천문학적인 예산, 획기적 기술 개발과 제도개선이 전제되어야 가능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 NDC 계획에는 비용 추계도, 구체적인 연구개발 로드맵도, 수요관리 개선도 언급되지 않고 있어, 실현 불가능한 희망의 단순 나열에 불과하다.
새 정부의 정책은 실현가능성에서 차별화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탄소중립의 실현가능성을 높이려면, 첫째 탄소중립 달성 수단은 어떤 것도 함부로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탈원전을 폐기하고 원전을 탄소중립의 중요 수단으로 재정립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정책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새 정부의 구상대로 원전의 비중을 30% 정도를 유지하면, 2030년 재생에너지의 변동폭을 최대 30GW 대로 대폭 줄일 수 있어 그만큼 실현 가능성은 높아진다.
둘째, 탄소중립 기술개발의 국제 협력과 공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후변화는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선·개도국을 망라한 지구 공통의 이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현재의 기술로는 국가별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마땅한 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
사실 탄소중립 성패는 한계돌파형 기술개발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마도 향후 탄소중립의 향방은 기술개발 속도에 맞춰 계속 변모할 것이다. 따라서 탄소중립 기술개발의 국제적 공조만 유지하고 있으면, 탄소중립으로 인해 결코 우리만 곤경에 빠지는 일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기술협력 국가들과 함께 탄소중립 시대를 이끄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한미 간 원자력기술 협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셋째, 적극적 수요관리를 위한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수요증가를 억제하는 효율 향상과 재생에너지의 공급변동성을 상쇄시키는 수요관리는 탄소중립의 제1조건이다. 현재와 같은 철저히 통제된 가격제도와 독점된 시장 구조로는 효율향상도 효과적인 수요관리도 기대하기 어렵다.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가격 결정 기구의 독립성 확보와 독점구조 완화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밀어붙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무리수가 따르고 결국 경제 전체에 크나큰 내상을 남길 수 밖에 없다. 탄소중립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의 ‘안 되면 되게 하라’식의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일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