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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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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탄소중립 정책, 그럴듯한 구호보다 실용 앞세워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4.25 10:09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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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저서 ‘팡세’에서 "웅변도 계속되면 싫증이 난다"라고 말하였다. 지난 수년간 탄소중립을 두고서 "힘들지만 우리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웅변을 우리는 수없이 들었다. 2030년까지 무소의 뿔처럼 재생에너지를 빅뱅의 속도로 확대하자는 웅변이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했던 조상의 지혜는 잊으라고 하였다. 전력계통과 국내 재생에너지 생태계를 돌아보고 결정하자는 것은 ‘용기가 부족한 것이며 구태스런 꼰대 마인드‘라고 비판 받았다. 그 사이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한국의 에너지 믹스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힘들어도 도달할 수 없는 웅변으로 바뀌었다. 그 세월을 보낸 후 이제 와서는 7년 내에 도달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로 수정해야만 하게 되었다.

언어는 유희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2050년 탄소중립안을 보면 탈원전이 아니다. 여전히 원자력은 발전비중의 6∼7%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탈원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언어가 유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틀렸다. 경제는 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25% 비중에서 앞으로 6%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어느 우둔한 자가 20∼30년을 내다보는 투자에 돈을 쓰겠는가. 대학졸업 후에 6년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면 누가 10대를 바쳐 공부하겠는가. 탈 대입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6%는 이미 탈원전이다. 어쩔 수 없지만 원래 경제 원칙이 그렇다.

숫자는 웅변을 완성한다. 웅변이라고 하면 처칠이다. 덩케르크 철수 직후 처칠은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하지만 웅변만으로 나치를 이길 수는 없다. 히틀러가 런던 도심 침공에 몰두하느라 군수산업 공격에 소홀하고 있는 사이에 영국민은 전투기 스핏파이어를 생산했다. 독일의 매서슈미트를 물리친 것은 처칠의 웅변으로 사기가 고조된 영국인들과 함께 우수한 전투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도 숫자가 말해준다. 태양광과 풍력은 물리법칙을 따른다. 웅변만으로 물리법칙을 거스르고 2030년까지 100기가와트에 이르는 재생에너지가 단시간 안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웅변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숫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입산이 아닌 메이드인 영국으로 스핏파이어를 생산하였듯이, 우리도 국내 산업생태계 구축부터가 먼저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더 이상 웅변에 의존하지 않는, 듣기 좋은 말만 아닌 그런 에너지 기후변화 정책을 기대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의 주요 선진국은 지극히 국가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한 예로 ESG(환경·사회·투명경영)를 들 수 있다. 환경을 중시하는 ESG에서도 생물다양성에 관한 나고야의정서를 ESG에 포함하는 주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냐면 생물유전자 관련해서 이들 국가는 주로 보유국이 아니고 이용국이기 때문이다.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으며 자국의 산업생태계에도 도움 되지 않으면 소극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되 실용적 관점에서 국가의 잠재 GDP 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새 정부에서는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웅변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남은 시기에 재생에너지 물량 확대에 치중할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원자력으로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태양광, 풍력, 배터리, 수소와 암모니아, SMR 등 국내 산업생태계 기반을 강화하는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좋은 말만 하는 자는 좋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말도 하였다. 기후변화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가 어느 국가보다도 앞장서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렇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선한 주장에 감히 대꾸를 달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그때 깨달아야 한다. 침묵하는 불특정 다수가 많을수록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 또는 차차선책, 심지어 n차선책을 선택하게 된다는 점을. 현 세대가 실용을 챙기지 못하면 그 비용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후세대가 치르게 된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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