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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
전력정책심의회가 지난해말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추진방향(10차 계획)을 논의함으로써 계획수립의 시작을 알렸다. 전력수급계획은 상위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하위계획이다. 산업부는 2차 에기본의 수정없이 탈원전을 반영한 8차 계획을 수립한 것이 위법하다는 소송에서 "전력수급계획은 비구속적 행정계획이므로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레토릭은 가히 예술의 경지다. 물론 법원은 산업부의 손을 들어 줬다. 수급계획은 과연 비구속적일까.
우선 수급계획은 수요, 설비 등 실무소위와 분야별 워킹그룹의 구성으로 시작된다. 실무소위 위원은 수급계획안 작성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영향력이 전력정책 심의위원 보다 더 세다. 이번 정부에서 에너지관련 각종 위원회의 위원구성이 환경, 신재생 인사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늘 따라 다녔고, 결과가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어떤 인사들로 위원회가 채워지는지 면면을 살펴보면 대략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수요 예측 결과치이다. 정부는 작년 말 쫓기 듯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NDC 상향안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른바 내삽법으로 계산한 결과다. 10차의 계획기간이 2036년까지이고 탄중위의 2050년 전력수요가 1250TWh이므로 2036년의 발전량은 850TWh를 약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9차 계획의 2034년 발전량이 600TWh 수준이니까 발전량이 약 42% 늘어야 NDC와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다. 정책심의회 자료에서도 탄소중립 및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전기화 수요를 반영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세 번째, NDC 상향안은 전환부문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1.5억톤으로 정하고, 목표달성을 위한 신재생 발전비중을 30%로 제시했다. 이른바 ‘3030’ 계획이다. 기존의 목표 발전비율을 10% 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그런데 NDC 상향안의 2030년 예상 발전량은 600TWh, 신재생 발전량은 185TWh이다. 이 발전량에 기초하여 추정한 신재생 용량은 100GW 내외, 그런데 발전량이 40% 증가한다면 신재생 용량은 140GW로 늘어야 한다. 앞으로 매년 10GW 이상의 신재생 설비를 건설해야 한다. 신재생 용량이 10년 사이에 7배로 늘어날 수 있을까. 소위위원들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하다.
네 번째, 2036년까지는 "가슴이 뛴다"는 새만금 태양광, 신안풍력 등이 완성된다. 무려 11GW가 넘는 재생에너지가 호남지역에 건설된다. 전력계통에 태워야 전기를 소비할 텐데 9차 계획에는 새만금∼군산 분기점까지 345kV 연계선로만 계획되었을 뿐이다. 사실 그 조차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미 호남지역에는 전국에 건설된 태양광, 풍력용량이 40% 이상 집중되어, 수급불안정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밀양사태 이후 송전선로 건설이 수급계획의 핵심이 된지는 꽤 오래전부터다. 이 난제가 어떤 형태로 반영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다섯 번째,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원자력을 활용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지금까지 정부는 탈원전과 온실가스 감축 두 마리 토끼를 태양광, 풍력으로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심의회에서는 ‘무탄소 전원’이라는 말로 원자력의 가능성을 살짝 열어 놓았다. 작년 말 환경부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자력을 배제했고, 유럽연합(EU)은 원자력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킬게 거의 확정적이라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의 이집트 원전 건설 참여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여섯 번째 심의회에서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의 확대에 따른 저장장치 확대, 계통 안정성 보강 방안 등도 구체화하겠다"고 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대안들이다. 에너지전환을 포함하여 계통안정성 확보에 들어가는 비용이 계산될 것인지가 또 하나의 체크 포인트라 하겠다. 정부의 공신력있는 에너지전환 소요비용, 전기요금 영향이 제시되기 바란다.
이들 외에도 다른 이슈들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일단 이 정도 사항들을 체크 리스트에 올리고 수급계획 진행 상황을 지켜보시기 바란다.
이제 수급계획은 비구속적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차례다. 팩트는 과거에도, 현재도 수급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사업은 논의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월성 1호기는 지난 2017년 8차 계획 수립 당시 "내년(2018년) 상반기 중 경제성, 지역수용성 등 계속 가동에 대한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폐쇄시기 등을 결정한다"고 했었다. 정부는 이것을 조기 폐쇄 결정의 근거로 사용했다. 수급계획에 넣은 한 줄의 문장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지는 이것만으로도 증명되고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