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성철환

cwsung@ekn.kr

성철환기자 기사모음




[EE칼럼] 감상에 젖은 탄소중립 정책은 지양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9.22 09:00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2021091401000575200023261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장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조정안은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기준으로 35% 이상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최근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받았던 느낌은 다소 의외였다. "우리나라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로서 선진국이 되었으니 유럽연합(EU)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며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글로벌 사회에서의 책임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전제 조건에서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높다고 해서 EU 수준처럼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부자라고 칭할 때에는 그의 재산을 보는 것이지 월급이 많다는 의미가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에서 GDP는 플로우(flow) 변수로서 매년 벌어들이는 수입이며 이는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할 때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때 한국의 GDP는 직전 1996년의 6100억 달러에서 1998년의 3800억 달러로 곤두박질쳤다. 2007년 금융위기에는 1조 1730억 달러에서 2009년에는 9440억 달러로 미끄러졌다. 부국의 조건은 GDP가 아닌 자본스톡(stock)에 달려 있다.

개인으로 보자면 월급에서 틈틈이 저축하여 쌓아놓은 부가 바로 자본스톡인 것이다. IMF에 의하면 한국의 자본스톡은 2015년 기준으로 4조 달러인데 반해 일본은 이의 4배인 13조 달러, 미국은 33조 달러에 달한다. 아직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국은 지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GDP 대비 정부부채 증가율이 8%가 넘어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보다 재정적자 증가폭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해 벌어들이는 수입만을 보고 갑자기 부자행세하려고 하다간 탈이 나기 마련이다. 지금은 우리가 선진국 운운하면서 정작 그들도 행하지 못했던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을 하겠다고 선언할 때가 아니라, 저축을 하고 우리의 자본스톡을 쌓아야 할 때인 것이다. 여기서 ‘그들도 행하지 못했던 수준’이라는 말하는 것은 미국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 실질적으로 줄기 시작한 2005년 기준으로 감축을 선언하였고 EU도 유사하게 1990년, 일본은 2013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선언한 반면 우리나라는 바로 코앞의 2018년 기준에서 감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EU는 각각 셰일가스와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정작 온실가스나 탄소중립과 상관없는 외부요인에 의해 자연적으로 배출정점을 찍은 것을 사후적으로 확인한 후 이 해를 기준년도로 설정했다. 스마트한 전략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배출 정점도 확인하지 않은 채 코앞의 2018년 기준에서 35% 이상 감축하겠다는 것이니 어리석지 않은가.

그 감축목표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을 앞으로 남은 8∼9년 사이에 어떻게 달성할 지도 의문이다. 지금 NDC 상향조정과 관련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연구개발(R&D)을 도외시한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물량 확대 정책은 결국 중국과 EU의 태양광, 풍력업체들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며 게다가 국내 계통도 35%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계통설비를 갖추기에는 또 세월이 걸린다. 원자력 발전도 줄여놓았으니 그렇다면 결국 산업활동을 줄이는 것 말고는 35% 이상은 어찌 달성할 방법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탄소저장 및 포집(CCUS), 에너지효율 등등 기술옵션이 많지만 다들 티끌 모아 감축하는 방식일 뿐이며, 지금 우리가 말하는 대규모 감축에서의 실현 방안은 요원하다.

최근 미국의 인프라 딜과 탄소국경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는 모두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감상에 젖어 선진국 지위에 걸맞게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말잔치 뿐인데, 이와 같은 글로벌 사회의 탄소 무역 라운드에서 결국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비오는 날을 대비해 저축하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기후변화 위기는 갈수록 증대될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의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부를 쌓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35% 이상 감축하겠다" "40%도 모자란다" "50% 감축은 왜 하지 않느냐"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미국과 EU처럼 국내 산업생태계를 탄소중립에 맞춰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세밀한 설계부터 필요하다. 이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후세대까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바로 9년 후 현 세대가 하게 될 것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