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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를 지켜보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 |
북한에는 과연 석유가 매장돼 있을까. 사실 북한이 원유를 찾아나선 지 50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무런 성과가 없는 상태다.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매장량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와 "평양이 기름 더미에 떠 있다"면서 파이프라인을 깔아 북한의 석유를 남쪽으로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북한의 석유 매장량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안보리는 회의를 열어 북한으로의 유류공급을 30% 가량 차단하고 북한산 섬유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은 전면적 대북 원유금수가 아닌 부분 공급 금지, 제재 대상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빠지는 등 미국주도의 초강경 제재안에서 대폭후퇴, 북한 정권에 타격을 주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대다수다.
◇ "원유 수출 전면 금지해도 생존 가능"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를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대북 원유수출을 전면 금지하더라도, 수입 중단분을 보충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양의 원유가 북한에 매장돼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면적 원유 금수 속에서도 40∼50억 배럴 가량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개발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성(대외경제성)이 자체 추정한 데 따르면, 북한의 석유 매장량은 600~900억 배럴에 이른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석유매장량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는 지난 2015년 7월 현재까지 확인된 원유, 석유, 기타 정제유 매장량이 없다고 단언했다.
금융·지정학적 문제를 주로 다루는 유명 투자 전문 블로그 제로 헤지는 "북한의 석탄매장량과 수력 발전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석유매장량은 이전의 보수적인 추정치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며 EIA를 정면반박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자체적 평가는 어림잡은 것이지만 분명한 근거가 있다"고 부연했다.
◇ 북한내 원유 매장량 40∼50억 배럴…이미 22개 유정에서 시추 중
지난 2015년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가 지금만큼 나쁘지 않았을 당시, 영국 지질학자 마이크 레고는 석유 분야 지구과학 전문지 ‘지오엑스프로(GOX-PRO)’에 ‘북한 석유 탐사와 잠재력’이란 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의 석유매장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영국 석유개발회사 아미넥스 탐사프로젝트의 최고책임자로 근무한 레고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북한 현지에서 직접 자신이 탐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의 석유매장 증거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레고는 이 보고서에서 북한 내 매장된 석유를 40억∼50억 배럴로 추정하며 다수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레고는 원유를 바탕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꿈꾸는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할 것이라며, 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내렸다.
보고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은 1960년대 북한의 서부 해안을 따라 원유 매장량을 조사했다. 지난 1992년 러시아 역시 스위스의 타우루스 페트롤리움과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등 다수의 석유기업들과 함께 지질조사 작업을 벌였고 북한에 탄화수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레고 자신이 조사한 내용에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그는 북한의 서부 해안에 탄화수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최소 두 개 이상의 광구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유류가 흐르고 있다고 밝혔다.
1998년 영국 회사인 소코 인터내셔널은 북한이 루마니아에서 인수한 굴착장비를 이용해 북한의 잠재 유전 한 곳에 4300m 깊이의 유정을 시추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동해상의 대륙붕을 탐사한 영국 회사인 아미넥스(Aminex PLC)는 그 부지에 약 40~5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음을 확인했다.
비슷한 시기에 몽골 회사인 HB 오일은 평양 남쪽 지역에서 탐사 활동을 벌이며 22개의 유정을 채굴했다. 유정의 대부분은 원유를 함유하고 있었고 북한은 각 유정에서 하루 평균 75배럴을 추출할 수 있었다.
◇ 北 석유에 관심 보이는 기업들…장비도 이미 확보
북한 산업화가 정점에 달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 북한은 시장 가격 이하로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 시대는 끝났고 거래는 막을 내렸다. 지난 1991년 하루 평균 7만6000배럴에 달하던 북한의 원유 소비는 2013년 1만7000배럴로 급감했다. 원유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이 허리띠를 졸라맨 탓이다.
북한의 하루 평균 정제 가능 용량은 6만4000배럴이지만, 경제성장률이 급감하면서 정유공장 가동률은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지난 1990년대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을 겪을 당시는 정부는 식량조차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당시 북한은 평양에 공급할 전력도 확보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은 흘렀고, 상황은 변했다. 일부 중국 기업들은 북한 석유자원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철도 투자 그룹(The China Railway Investments Group)은 최근 북한 석유가스 분야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쉽지는 않는 상황이다. 북한은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로부터 초강력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국제은행, 무역, 여행 모두 막혔다. 이외에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일본으로부터 개별 국가 제재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대북 전문가인 드미트리 베르코투로프는 "북한의 원유 추출 능력을 제한하는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국내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석유매장량과 정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제재로 인해 해외에서 현대적 시추 장비를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내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의 장비는 이미 구비하고 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원유 채굴장비 대부분은 1991년 이전 구소련이나 루마니아를 통해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비는 루마니아가 사회주의 노선을 택했던 차우셰스쿠 정권 당시 구매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시추 장비를 갖고 있지 못하리라는 판단은 흔한 오해"라며 "추가로 수입할 필요 없이, 기존 장비를 복제하고 현대화해 필요한 물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기술력 이미 충분 "에너지 자급자족 가능할 듯"
회의론자들은 해외기업의 기술력과 장비, 자금력, 군대, 에너지 섹터 등 북한이 미비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제로 헤지는 지금까지 북한의 행적을 볼 때, 컴퓨터·무기·에너지 추출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스스로 주장하는 내용 뿐 아니라, 북한의 석유자원을 과장할 필요가 전혀 없는 독립 계약자와 전문가들 역시 유사한 견해를 보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술을 새로 개발할 필요 없이, 기존 원유 추출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기존 모델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 건립하는 정도로도 유전을 개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제로 헤지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가 야기한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정치적 긴장감은, 향후 어떤 상황에서도 전면적 원유 금수 조치는 불가능할 할 것임은 시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설령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북한은 막대한 양의 석유를 개발해 에너지 자급자족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위협에 금세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미트리 전문가 역시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북한이 새로운 미사일과 핵무기 생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큼이나 에너지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2001년에서 2002년까지 몽골 회사가 시추한 유정을 포함해 자체 유전에서 석유 추출을 이미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하루 75배럴의 생산 능력을 갖춘 유정은 연간 2만7000배럴을 생산하며, 10개의 유정이 연간 27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다"면서 "이것은 아주 최소한이며, 북한은 더 많은 석유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드미트리는 "석유 금수 조치는 북한이 자체 원유 생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할 뿐이며, 더 엄격한 제재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려는 남한과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은 또 다시 실패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