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펜을 선물받는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일부터 외국에서 수입되는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국내 주요 의약품 수출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직 관세 부과 대상 품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우리 주요 수출 품목인 바이오시밀러, 혈액제제, 보툴리눔 톡신 등의 제조 기업들은 각각 상황파악 및 대응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2025년 10월 1일부터 모든 '브랜드 의약품' 또는 '특허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다만 기업이 미국에 의약품 제조시설을 건설 중일 경우에는 관세 부과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취임 직후부터 의약품 품목관세 부과 방침을 거듭 밝혀 왔지만 부과 시점을 명확하게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지난달 밝힌 '처음에는 적은 관세를 부과하다가 단계적으로 관세율을 인상'한다는 방침과 다른 내용이다. 업계는 이번 발표는 '엄포'를 넘어 실제 '액션'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의약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온 결과가 이미 나온 것으로 알려진 만큼 관세 부과 개시일인 다음달 1일 이전에 조사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엔데믹 이후 대미 의약품 수출 증가세를 기록해 온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더욱이 이번 의약품 관세 100%가 이미 미국과 무역 협상을 마무리한 일본과 유럽연합(EU)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업계는 더욱 비상이 걸렸다.
당초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의약품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구두 합의한 바 있으나 이후 서면 합의가 지연되면서 우리나라는 100% 적용을 받게 될 전망이다.
다만 100% 관세 부과 대상 품목이 아직 유동적이고, 이에 따라 기업별 대응 상황도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향후 국내 의약품 대미 수출에 미칠 영향을 예상하기는 이르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100% 적용 대상으로 언급한 의약품은 '브랜드 의약품'과 '특허 의약품'이다.
브랜드 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복제한 의약품 중 특정 상표명으로 판매되는 제품'으로,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이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아닌 '개량신약(바이오베터)'을 의미하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특허 의약품'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를 받은 오리지널 의약품을 뜻한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미국이 부과하는 품목관세는 HS코드로 관리되고 있는데 의약품에 대한 HS코드로는 브랜드 의약품, 특허 의약품, 개량신약(바이오베터), 특허만료 의약품(제네릭 및 바이오시밀러)을 구분할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SNS 발표 내용만으로는 관세 100% 부과 대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의약품 수출액은 92억7000만달러(약 13조원)로 이 중 59.5%를 '바이오의약품'이 차지했으며, 그 대부분은 바이오시밀러가 차지한다. 이어 '기타의 조제용약'이 2위(7.7%), '원료 기타'가 3위(5.8%)이며 '독소류 및 톡소이드류'가 4위(3.9%), '면역혈청과 혈액본획물 및 면역물품'이 5위(3.0%), '백신류'가 7위(2.7%)이다.

▲지난해 7월 충북 오창 GC녹십자 오창공장에서 미국 수출용 혈액제제 '알리글로'가 출하되는 모습. 사진=GC녹십자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가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는지 아직 불분명하지만, 최근 일라이릴리와 미국 조지아주 현지 생산공장 인수 본계약을 체결해 느긋한 상황이다. 셀트리온으로서는 미국 의약품 관세 리스크를 해소한 것을 넘어 현지 생산공장이 없는 기업을 대상으로 위탁생산(CMO) 수주 기회도 얻게 됐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현지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제품명 엑스코프리)를 수출하는 SK바이오팜은 최근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관세 불확실성에 대비해 이미 현지 공장의 FDA 승인 등 미국 내 생산을 준비해 온 만큼 이번 발표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FDA 승인을 받은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미국에 수출하는 GC녹십자는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혈액제제는 미국 내에서 수요가 부족한 필수의약품인 만큼 세부적인 발표를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GC녹십자 관계자는 “알리글로는 미국 현지 자회사 ABO홀딩스가 미국 혈액법에 따라 100% 미국산 혈장을 사용해 제조하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 행정명령에 따르면 완제품 구성물 중 미국산 원료의 비중이 20% 이상인 경우 비(非) 미국산 원료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관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FDA 승인을 받아 미국에 보툴리눔 톡신을 수출하는 기업들도 상황을 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보툴리눔 톡신 '보툴렉스'(미국제품명 레티보)를 수출하는 휴젤 관계자는 “현지 판매는 파트너사인 베네브가 담당하고 있다"면서도 “추후 구체적인 정책에 따라 대응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미국제품명 주보)를 수출하는 대웅제약 관계자 역시 “세부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일단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