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내 한 가전제품 매장 TV 코너. 삼성전자 QLED TV 옆에 TCL 제품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made in China' 중국 소비재 제조사들이 한국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헤어드라이기, 보조배터리 같은 소형제품을 넘어 중대형 가전, 자동차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중국산=저가 저질' 공식도 옛말이다. 단순 '저가 공세'를 넘어 상품의 질을 높이고 고객서비스(AS) 질을 향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한국 소비자 감성'을 파고들고 있다. TCL, 하이센스, 샤오미, BYD 등이 국내 영토를 넓히고 있는 반면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한국기업들은 중국 본토 공략에 애를 먹고 있어 비교가 된다. 막대한 자본과 첨단 기술에 현지고객 서비스까지 내세운 중국 소비재 기업의 국내 진출 현황과 한국기업의 대응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20일 찾은 수도권 내 한 롯데하이마트 매장. 건물 외벽에는 로봇청소기 브랜드 '로보락'의 신제품 홍보 포스터가 크게 걸려있다. 1층 태블릿PC 존은 레노바 PC가 삼성전자와 경쟁구도를 그리고 있다. 대형가전이 전시된 코너도 삼성전자·LG전자 바로 옆에 중국 TCL의 75인치급 TV가 존재감을 드러냈고, 목이 좋은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는 로보락 브랜드의 1인용 세탁·건조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 가전 브랜드들은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TCL, 하이센스, 샤오미 등이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영업활동을 시작한 시기다. 롯데하이마트에서 3년여간 일했다는 한 직원은 “예전에는 컴퓨터 주변기기나 소형 가전 정도가 중국산이었지만 최근에는 대형 TV 등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 브랜드의 강점은 가격이다. 65~75인치 정도 크기의 TV를 산다면 TCL이 LG전자보다 100만원 가량씩 저렴했다. 성능은 비슷한 수준이다. 카드 사용 등을 통해 추가 혜택까지 제공해 고객 진입 장벽도 중국산이 더 낮았다. 제품을 소개해 주던 직원은 “아예 TCL 제품 성능을 직접 보기 위해 방문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유통사 자체브랜드(PB)의 경우 할인 폭이 더 컸다. 롯데하이마트가 운영하는 '하이메이드'나 '플럭스' 처럼 중국에서 만드는 제품들이다. 하이메이드 64인치 UHD TV 전시 제품은 60만원대에 팔리고 있었다. 50인치 전시특가는 40만원대까지 내려왔다.
상품성도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하이마트가 새롭게 출시한 플럭스 75인치 TV는 고주사율 패널이 적용된 4K급 제품으로 TV 매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있다. 가격은 놀라울 정도다. 75인치 TV임에도 한시적으로 120만원대에 판매 중이었다. 동급 TCL 제품은 전시 상품을 200만원 초반대에 구매할 수 있다. 삼성·LG전자 브랜드로 사려면 300만~400만원이 필요하다.
이동형 TV를 구매하러 왔다는 한 30대 남성은 “스탠바이미2가 120만원인데 플럭스 43인치 QLED TV는 40만원대"라며 “거치대까지 구매해도 반값이 안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내 한 롯데하이마트 TV 코너에 중국산 PB(자체브랜드) TV 제품 '플럭스'가 진열돼 있다. 75인치 4K급 사양을 자랑하는 플럭스의 가격은 100만원대 초반이다. 사진=여헌우 기자.
근처 전자랜드의 경우 TCL 등 대형가전이 전시돼 있지는 않았다. 이 곳 직원은 “(중국산 TV) 카탈로그 등이 따로 준비돼 있진 않다"면서도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팔고 있어 그런지 올 들어 저렴한 중국산 TV가 있냐고 묻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전양판매장에서는 중국 로봇청소기 브랜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매장의 로봇청소기 코너에서 삼성·LG전자보다 로보락 제품이 앞에 전시돼 있었다. 세탁기 코너 한편에 위치한 로보락의 미니 세탁·건조기에는 '특가 할인' 표시가 돼 있다. 1인가구를 겨냥해 세탁기와 건조기 기능을 합친 모델인데 100만원 초반대에 구매 가능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교체주기가 잦은 소형가전 분야는 이미 중국산이 국내시장 대부분을 장악했다고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TV나 냉장고·세탁기 같은 대형·고가 가전은 비용 부담이 크고 애프터서비스(AS)가 불편하다는 게 진입장벽 역할을 해왔는데 중국 브랜드들이 '저가 공세'를 통해 허물고 있는 것"이라며 “AS나 인지도가 낮다는 단점 극복을 위해 국내 유통사와 PB(자체브랜드) 협업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