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SKT타워에서 열린 유심정보 해킹 사고 관련 데일리 브리핑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이태민 기자
대규모 유심정보(USIM·가입자식별모듈) 정보 해킹 사고 이후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SK텔레콤의 가입자 이탈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입 해지 위약금으로 인해 통신사를 옮기지 못하는 이용자가 적지 않아 이를 면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SKT가 위약금 면제는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SKT는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아 위약금 면제 해지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 오는 8일 오후 2시로 예정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청문회를 앞두고 회사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견서에 따르면 SKT는 번호이동 가입자에 대한 해지 위약금 면제와 관련해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손실 불가피 △이용자 간 형평성 이슈 △사회 전반의 신뢰와 시장 질서를 고려할 필요 등을 근거로 들어 사실상 이같은 여론을 수렴하기 어렵다는 뜻을 시사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SKT타워에서 열린 해킹 사고 관련 데일리 브리핑에 참석해 대국민 사과했다. 그러나 위약금 면제에 대해선 “법적 검토 중“이란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향후 SKT 이사회 논의 결과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률 검토 등을 토대로 종합적인 입장을 내놓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사회는 △이용자 간 형평성 이슈 △주주이익 훼손 문제 방지를 중점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향후 위약금 면제가 확정될 경우, 결정 이전에 통신사를 옮긴 이용자들에 대한 소급 적용 여부와 통신사를 옮기지 않은 이용자에 대한 조치 기준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는 SKT가 위약금을 면제할 경우, 재무적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어 유보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정헌 의원실 등에 따르면, SKT의 전체 위약금 규모는 “개별 고객과 약정에 따른 것"이란 이유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이번 사고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신규 가입이 중단된 상황에서 가입자 이탈이 지속될 경우, 동사 신용도를 지지하고 있는 최상위권의 무선통신서비스업 내 시장 지위가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가입자 규모 및 매출액, 개인정보보호법상 과징금 한도 등을 감안할 때 합산 지출규모는 최대 4000억원을 상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SKT 측은 의견서를 통해 신규가입 중단을 결정한 상황에서 위약금 면제까지 시행할 경우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합리적 근거 없이 추진될 경우, 주주 대표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측은 “위약금이 높은 고객 중심으로 번호이동을 할 가능성이 높고, 수백만 회선 해지로 회사 존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국가기간통신사업자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자칫 관련 제도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제품을 구매한 뒤 원가보다 비싸게 재거래하는 '리셀 현상'이 심화되면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객이 위약금을 면제받고 해지한 후 단말기를 중고로 되팔 경우, 수십만원의 차익을 얻으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는 “사고 발생 이후 불법 유심 복제로 인한 피해 사례는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 판단 없이 위약금을 면제할 경우, 일방의 주장만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상을 요구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과방위 SKT 해킹 사고 관련 단독 청문회는 유영상 SKT 대표가 출석할 예정이다. 과방위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도 함께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준비를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