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주 칼럼]비상계엄 사태...우리경제에 미칠 영향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12.05 10:30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원주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6시간 만에 국회의 해제 의결과 대통령의 수용으로 무력화되었다. 기록적인 짧은 시간에 헌정 사상 초유의 민주주의 파괴 위기를 극복해낸 우리 국민들과 국회에 대해서 각국 언론을 중심으로 놀라워하는 반응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위기를 빨리 극복했다고 자랑스러워 할 상황은 전혀 아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이미 우리 시장경제 질서가 폭력적 권력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 지 드러났고, 이러한 상태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한국의 대외 신인도와 경제 환경에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번 위기가 순조롭게 극복된다 해도 외국 기업을 비롯한 우리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다시 한국을 신뢰할 만한 협력 대상으로 평가해 주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에 국민들이 더욱 배신감을 느끼는 지점은 대통령이 용인에서 열린 민생경제 토론회에 참석하여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하고, 물가 안정을 위한 재정 투입 등을 통해서 고통받는 서민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한 바로 다음 날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외국인과 개미 투자자들의 이탈로 주가가 폭락했고 달러 환율도 순식간에 1446원까지 급등한 뒤 겨우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제상황의 악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을 당사자들은 바로 윤 대통령이 지원하겠다고 했던 서민들 아닌가? 사단이 벌어진 뒤 금융, 경제당국은 금융시장과 산업계, 민생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비상조치를 발표하고 있지만 이미 벌어진 국민들의 피해를 과연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서민을 위한다며 도대체 어떤 서민을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것인가?


이러한 정치적 파행 이전에 이미 우리 경제는 큰위기에 처해 왔다. 부동산 발 PF 위기 여파로 서민 경제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 종식 이후 나름의 경기 붐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는 고물가와 소득 정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표 대기업들의 실적 저하로 만성적인 불경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인 위정자라면 이런 때 국민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정치적 도박을 해서는 안 되었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불안심리는 우리 내수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우려가 적지 않고, 이는 내수경제의 중심축인 중소기업과 서민경제에 특히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일로 우리나라가 여러 나라 정부로부터 여행주의 대상국가로 지정됐다는 소식도 여러 건 보도되고 있다.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리나라를 향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줄어 드는 것이 더 큰 걱정거리다. 관광객 수의 감소 또한 관광업과 요식업 등 우리 내수 경제에 적지 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비상계엄 발표 직후 시내 편의점의 식품류가 동나는 등 매점매석 사태가 있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다. 국내 정세 불안은 시장의 정상적인 유통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시장이 이처럼 정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면 정상적인 유통 질서가 회복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위기가 불과 수시간 만에 해소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심각하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더 본격적인 시장 불안으로 자리잡을 우려도 있으며 이는 우리 경제의 회복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12월 3일 밤, 국회의 해제 요구 의결을 막기 위해서 여의도의 마천루 사이를 여러대의 군헬기가 질주하면서 무장병력을 국회의사당에 쏟아냈다. 또한 특전사 병사들이 총기를 들고 의사당의 유리창을 깨거나 우발적으로 야당 대변인에 총기를 들이대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여과 없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평가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서, 외국인 투자자들과 글로벌 기업들에게 한국이 지금까지처럼 안전한 투자처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식되리라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안이한 것 아닐까? 이미 영국 BBC는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의 평판을 (미국에서 벌어진)1월 6일 폭동때 (미국)보다 더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으며, 이번 계엄령 선포가 한국의 경제와 안보를 불필요하게 위험에 빠뜨렸다는 아픈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고속성장과 두 차례의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경제적 역동성과 안정된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이번 일로 얼마나 훼손되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는 외국인 투자만이 아니라 우리 수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우리 경제는 저가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으로 싼값에 물건을 내다파는 개발 경제의 시대를 넘어서 있다. 우리 수출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신뢰가 훼손된다면 기업들의 장기 안정적인 거래에도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수출 환경에 또다른 도전이 될 수 있다.




당장 우리가 위기 상황을 신속하게 해소하여 영구적인 피해를 막았다는 점은 평가해 줄 만하지만, 아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 경제가 갈 길도 달라질 것이다. 위기를 온전하게 극복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탁월한 복원력(resilience)을 입증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최악의 사태를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복원하고 국내외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우리 경제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민들부터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지켜 봐야 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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