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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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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침체가 무서워"…국제유가, 3개월래 최저로 추락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09 12:07
USA-OIL/REFINERIES

▲미국 정유공장(사진=로이터/연합)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거뜬히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됐던 국제유가가 3개월 만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원유 수요가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중동 분쟁보다 더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유가 추가 하락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8일(현지시간)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64% 하락한 75.33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WTI는 전날에도 4.26% 급락한 바 있어 2거래일 만에 7% 가까이 빠진 셈이다. WTI가 배럴당 75달러대를 찍은 것은 지난 7월 20일(75.65달러)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ICE 선물거래소에서 내년 1월분 브렌트유 또한 2.5% 하락한 79.54달러를 기록, 지난 7월 이후 처음으로 80달러선이 붕괴됐다.

시장 참가자들이 전쟁보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에 더 주목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현재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의 경제 전망에 대한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RBC 캐피털 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원자재 전략 총괄은 "트레이더들은 중동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시작했다"며 "이와 동시에 미국, 유럽, 중국에서 나오는 경기 상황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9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월대비 0.2% 하락해 지난 8월(0.1% 상승) 이후 석 달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함께 발표된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2.6% 하락했다. 8월(-3.0%)에 비해서는 낙폭이 줄었으나 전달(-2.5%)보다는 하락 폭이 컸다.

이에 따라 중국 디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 전날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수출액이 전년 동기대비 6.4% 줄고 수입은 3% 늘었다.

경기 회복이 여전히 부진한 점을 반영하듯, 중국 정제마진이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동시에 원유재고는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찻주전자(teapot)로 불리는 중국 민간 정유사들의 최근 정제마진은 지난 1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영향으로 찻주전자들이 밀집한 산둥지역에서 지난 3일까지 주간 공장 가동률이 57%로 집계, 작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 원유재고는 지난 2주 동안 상승세를 이어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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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간 WTI 가격 추이(사진=네이버금융)

이와 함께 미국석유협회(API)는 지난 주 미국 원유재고가 1200만 배럴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사실로 확인되면 재고가 지난 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날 원유 재고 관련 자료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연기해 오는 15일 2주 분량을 한꺼번에 공개할 예정이다.

EIA는 또 최근 월간보고서를 통해 올해 미국 원유 소비가 하루 30만 배럴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해 기존 예상치(10만 배럴 증가)를 뒤집었다.

유로존 경제상황도 녹록치 않다. 8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통계 당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9월 유로존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대비, 전달 대비 각각 2.9%, 0.3% 감소했다.

이런 와중에 공급 측면에서는 이팔 전쟁이 한 달을 넘겼지만 석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아울러 러시아 원유 출하량은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프라이스 퓨처스그룹의 필 플린 애널리스트는 "최근 유가 폭락은 중국 경제지표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제가 벽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와 중동 분쟁이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사우디아라이바와 러시아 등이 감산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유가 하락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스웨덴 은행 비얀 쉴드롭 SEB의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유가가 8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사우디와 러시아 정부 예산이 압박을 받기 때문에 시장은 양국의 추가 조치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며 사우디와 러시아가 가격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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