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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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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무탄소연합, 기후변화 대응 선도 플랫폼 되길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22 05:27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장

백원필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장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한화솔루션, 한국전력 등 14개 국내 주요 기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무탄소(CF)연합’이 지난 12일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했다. CF연합은 재생에너지만을 중시하는 ‘RE100(재생 전기 100%) 이니셔티브’와 달리 원자력, 청정수소, 탄소포집·활용·저장까지 포괄하는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를 목표로 한다. 정부와 산업계가 CFE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는 이유는 국내 에너지 자원 및 산업 환경에서 RE100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RE100 이니셔티브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2014년 시작된 민간 차원의 캠페인이다. 2014년 당시 세계 전력 생산의 66.8%를 화석연료가 담당했으며, 수력(16.5%)을 제외한 재생 전기 점유율은 풍력 3.1%, 바이오 1.9%, 태양광/태양열 0.8%로 매우 낮았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태양광과 풍력 등의 이용을 장려하는 RE100 이니셔티브가 큰 호응을 얻으며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GM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했다. 현재는 421개 기업·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 등 34개 기업이 가입했다.

RE100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하부 공급망에도 재생 전기 사용 확대를 요구하고 있어 국내 수출기업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그래서 국내 일각에서는 RE100 이니셔티브를 불변의 국제규범으로 간주하면서 태양광과 풍력의 급속한 확대 정책을 주장하기도 한다. RE100 이니셔티브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RE100은 불변의 체계가 아니다. 여기에 가입한 포춘 선정 글로벌 500대 그룹은 15% 수준에 불과하다. RE100에 기대어 원자력보다 5배나 비싼 변동성 재생에너지를 무조건적으로 확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도 비중이 크게 높아질 신재생 전기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RPS) 제도를 개선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발전공기업 대신 민간 수출기업들이 구입하게 하면 된다. 원자력과 수력 등 무탄소 전기만을 생산하는 한국수력원자력에게까지 RPS를 적용하는 현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최근의 에너지 환경은 RE100 이니셔티브가 출범한 2014년과는 크게 다르다. 첫째, 무탄소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 위상이 확고해지고 있다. EU 택소노미에서 원자력을 포함하는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원자력을 중요한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 등 대부분의 국제기구들도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량을 최소한 2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본다. 둘째, RE100 이니셔티브가 국가 간 에너지 불평등을 가져오고 부당한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생 자원이 풍부하거나 제조업이 발전하지 않은 국가들은 재생전기가 풍부하고 생산단가가 낮아서 RE100 이행에 따른 부담이 작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재생에너지 자원 자체가 부족하고, 발전원가도 크게 높은 경우도 많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RE100을 강요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셋째, 원자력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해결되고 있다. 대형 원전의 안전성 강화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로 원전 사고에 대한 우려가 크게 줄었다.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 사용후핵연료 지하 처분이 가시화되면서 사용후핵연료 관리 이슈도 해소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력 자원이 빈약한 산업국가가 원자력을 배제하면서 탄소중립, 에너지 안보, 합리적 전기요금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 인도 등 주요국 대부분이 원자력 확대를 추진하는 이유다.

CFE 이니셔티브는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 자원을 활용하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어서 재생에너지 여건에 따른 기후변화 대응능력의 격차를 줄이고 탄소중립 목표의 본질에 부합한다. 또한 UN의 에너지분야 협력기구인 UN에너지와 구글 주도로 2021년 출범한 ‘24/7 무탄소에너지 협약(CFE Compact·24시간,1주일 내내 무탄소에너지 사용)’에도 부응한다. 궁극적으로 프랑스, 미국, 일본, 영국, 중국 등 원자력을 중시하는 국가들이 호응할 가능성이 크다.

CFE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성과를 거두면 기후변화 대응에서 우리나라의 리더십이 강화되고, 전력공급 비용이 신재생의 20% 수준인 원자력 이용의 확대로 기업의 부담을 크게 낮추면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나아가 SMR이나 청정수소 등 에너지 신산업 창출과 수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CF연합이 각국 정부와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CFE 이행·검증 체계와 국제 표준을 선도해 실사구시적인 기후변화 대응 플랫폼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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