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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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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멀고도 험난한 원전 정상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03 06:34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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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신한울 2호기가 드디어 내년 4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결국 마음을 바꿔 지난 7일 신한울 2호기의 운영 허가를 승인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 허가를 신청한 지 무려 10년 만이다. 2018년 4월부터 가동을 시작하려던 당초 계획에서 6년이나 미뤄지면서 한수원은 엄청난 손실을 떠안았다. 신한울 1·2호기의 가동 지연으로 발생한 직접적인 손실만 9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4500만톤에 달하는 온실가스 저감 효과도 날아갔다.

문재인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인 망국적인 ‘탈원전’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신한울 1호기와 2호기의 가동이 예정보다 각각 68개월과 72개월이나 지연됐고,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3·4호기의 공사도 늦어지고 있다. 원전 건설·가동의 지연은 파국적인 한전 적자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다.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한전이 kWh당 평균 정산 단가가 무려 76.9원이나 더 비싸고, 구입가격도 불안정한 LNG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탈원전을 정당화하려고 의도적으로 축소한 전력 수요 예측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작업’을 기반으로 올해 1월에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6년까지 필요한 전력 설비용량을 143.9GW로 전망했다. 그런데 정부가 기술 패권 시대에 우리의 생존을 걸기 위한 먹거리로 적극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반도체·이차전지 등의 첨단산업은 막대한 전력 수요를 전제로 한다. 삼성전자 등이 용인에 조성할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최대 10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도 만만치 않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마련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전력수요의 전망을 획기적으로 현실화하고,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신규 원전의 추가 건설은 불가피하다. 원전 추가건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국제 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주민 거부감이 심한 원전 부지를 확보하는 일부터 간단치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지 후보지를 해지한 대진·천지 원전 부지를 다시 확보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주민 설득에 필요한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지만 확보한다고 곧바로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형 원전 APR-1400의 경우 원전 1기를 짓는 데 5조원이 넘게 든다. 건설에 소요되는 기간도 10년이 훌쩍 넘는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한 시점부터 따지면 원전의 기획·건설 기간은 20년이 넘는다.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처음 담겼던 신한울 3·4호기는 2032년에야 준공 예정이다. 그동안의 물가상승률도 고려해야 한다. 심각한 자본 잠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악화된 한전의 입장을 고려하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노후 원전의 계속 가동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고리 2호기를 비롯해 2030년까지 10기의 설계수명이 종료된다. 한수원이 설비 안전성을 평가하고, 원안위의 심사를 끝내는 데만 2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주민 의견을 수렵해서 운영변경 허가를 받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탈원전을 앞세워 백지화한 연장 가동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원전을 완공해도 곧바로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발전소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송전망을 깔아야 하지만 주민수용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현재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은 이미 송전 선로의 용량인 11.4GW를 훌쩍 넘어선 15.5GW에 달한다. 여기에다 신한울 2호기의 가동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더욱 절박해진다. 동해안과 신가평을 잇는 송전선로는 2025년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으로 15년째 답보상태다. 6년이나 걸린 밀양 송전탑 건설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다.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의 건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안이다. 현재의 습식 저장시설은 2028년부터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월성 원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식 저장시설이라도 서둘러 확대해야 하는 형편이다.

전력 다소비 업종인 제조업이 국가 중추산업인 데다 반도체,바이오,AI 등 첨단산업을 장착해야 하는 한국의 경제 현실에서 전력은 단순한 에너지를 넘어 경제혈류이며 국가안보다. 그 핵심이 바로 원전이다. 원전 확충은 정부와 한전만의 일이 아니다. 원전 생태계 회복과 시설의 적기 확충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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