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묻지마 시위’에 대한 자정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법으로 규정된 도로 위 ‘안전지대’에서도 집회가 강행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시민 안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일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안전지대 시위는 운전자들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 위험을 높여 시민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갑작스런 돌발 상황 발생에 시위자들이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등 다수의 안전을 볼모로 삼고 있다.
현대차그룹 사옥 앞인 서울시 서초구 염곡사거리 안전지대에서 7월 중순부터 2주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가 대표적이다. A씨는 기아 판매대리점에서 대리점 대표와의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된 후 현대차그룹 사옥 앞에서 10여년 간 시위를 벌여 왔다.
해당 판매대리점 대표는 개인사업자로 기아와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기아에 ‘원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디고 전해진다.
A씨는 현대차그룹 사옥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0m 떨어진 염곡사거리 중앙 약 700m² 넓이의 ‘황색 안전지대’를 점용하고 있다. 차량을 비롯해 천막, 현수막, 고성능 스피커, 취식 도구 등의 물품을 도로 위에 방치한 채 매일 집회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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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사옥 앞인 서울시 서초구 염곡사거리 안전지대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
A씨가 시위 장소로 점용하고 있는 황색 안전지대는 도로 중앙에 황색 빗금이 쳐진 곳이다. 교통사고와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할 시 보행자와 위급 차량의 안전을 위해 마련된 공공의 대피 공간이다.
도로교통법 제32조 3항에 따르면 도로 위 안전지대는 사방으로부터 각 10m 이내부터 차량 정차나 주차가 금지돼 있다. A씨 측은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채 안전지대를 거점 삼아 위험천만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염곡사거리는 왕복 10차선에 이르는 서울시내 주요 도로인 양재대로와 강남대로가 인접한 곳이다. 교통량이 많고 정체가 잦은 수도권 주요 혼잡 구간이다. 상습 정체뿐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양재IC를 비롯한 복잡한 교통체계로 인해 전국에서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행정안전부와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염곡사거리는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전국에서 네 번째로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한 장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A씨 측은 사거리를 지나는 차량들이 유턴하는 지점 인근에 천막을 세우고 시위 차량들을 불법 주차해두면서 운전자들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다수 인원을 동원해 안전지대 한가운데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기존에도 혼잡도가 높은 염곡사거리 주변의 교통사고 발생 위험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스피커와 현수막 등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왕복 9차선 대로를 무단횡단하기도 했다. 각종 시위 집기류를 옮기고 현수막을 안전지대와 도로 곳곳에 설치하기 위해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차도 위를 거리낌 없이 활보한 것이다.
아울러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안전지대 인근 도로변에 노상 방뇨를 하거나 안전지대 한복판에서 단체로 취식 및 노숙을 하고, 심지어는 안전지대 내 아스팔트 위에 현수막을 못으로 박아 고정하는 등의 위험천만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교통안전 전문가들은 안전지대 내 시위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안전지대에 차량이 주정차해 있거나 장애물이 방치될 시에는 시야가 막혀 위험하고 위급 상황에 대피할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지대에 서 있던 차량이나 사람이 다시 차로로 갑자기 합류할 때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지난 2013년부터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사옥 주변 보행로와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성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다수 설치하고, 원색적인 욕설을 섞은 소음을 유발하며 시위를 이어왔다.
이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대기업 사옥 근처에서의 현수막 남용은 자칫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길가에 마구잡이로 설치된 현수막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며 교통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A씨가 사옥 앞 보행로 한가운데 도로점용허가 없이 설치했던 불법 천막 안쪽에는 부탄가스, 휴대용 버너, 난로, 휘발유 등의 인화성 물품까지 방치되며 화재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에 서울 서초구청은 지난 6월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의 현수막 19개, 천막 2개, 고성능 스피커를 비롯해 인화성 물질인 가스통, 부탄가스 등 시위 물품을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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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사옥 앞인 서울시 서초구 염곡사거리 안전지대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
그럼에도 A씨 측은 서초구청의 조치에 불복한 채 지난 7월부터 현대차그룹 사옥 앞 왕복 9차선 도로 위 안전지대에서 주변 시민들과 운전자, 나아가 시위자 본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도심 내 만연한 불법 시위로 안전권을 상시로 위협받는 시민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소음 기준이나 도로 점거 규제안에서 한 걸음 나아가, 보다 구체적인 수준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타인의 기본권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공권력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시위 장소를 벗어나 보행로나 건물 입구를 막거나 일반 시민을 욕설 등으로 위협하는 경우를 모두 불법으로 간주해 곧바로 경찰력을 투입한다. 프랑스와 일본은 차량을 도로에 세워 정체를 유발하는 등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시위를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언제까지나 타인의 권리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는 기본권"이라며 "불법 시위로 인해 시민의 안전권이 더는 침해되지 않도록 조속히 집시법을 보완해 모두에게 안전한 시위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