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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는 왜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야 하는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23 10:00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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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국제정치학)

오늘날 한국은 역사적 유례를 찾기 힘든 이중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30년의 위기’다. 카(E.H. Carr)는 『20년의 위기』에서 권력정치와 국가이익을 국제법과 국제제도로 대체하여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던 이상주의적·낭만적 발상의 파탄을 지적했다. 한편, ‘30년의 위기’는 대화·협상·타협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던 노력의 붕괴를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북한 핵개발의 진정한 목표와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이 겪었던 딜레마의 귀환이다. 소련의 재래식 전력이 우세했던 1949년 창설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미국 핵무기에 주로 의존(핵우산/확장억제)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소련이 미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게 되자, 미국의 핵억제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파리를 구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다그친 드골 대통령의 돌직구가 이를 상징한다.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확장억제는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인 2006년, 미국의 압도적인 핵전력 우위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미 본토를 핵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1949년의 딜레마’가 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미국 핵억제력의 약화로 인한 확장억제 신뢰성의 문제에 대하여 3가지 해법이 제시되었다.

첫째, 미국은 유럽 동맹국에 전술핵 배치를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수천발에 달했으나, 냉전 이후 대폭 줄어 지금은 벨기에·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터키에 100~150발만 남아 있다.

둘째, NATO 동맹국들과의 핵공유 정책이다. 핵심은 동맹국들이 핵전쟁 발발시 자국에 배치된 미국 전술핵의 사용권을 부여받는 것이다. 평시에 통제권을 미국이 보유하므로 NPT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이 아니다.

셋째, 회원국의 독자 핵무기 확보다. 영국(1952년)과 프랑스(1960년)가 핵개발에 나선 이유는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한반도에 ‘1949년의 딜레마’가 반복됨에 따라,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독자 핵개발 등의 대안들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중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고정배치 기지가 북한의 선제공격에 노출되고, 배치장소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에 취약한 문제가 있다. 핵공유도 NATO 같은 집단안보체제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남은 대안은 독자적 핵무장이다.

우리가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야 하는 다섯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비핵화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일례로 2021년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는 "지난 30년간 미국의 북한 정책이 모두 실패했다"며 "완전·검증가능·불가역적 비핵화(CVID)는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1월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6%가 "북한 비핵화 불가능"이라고 답했다.

둘째, 확장억제의 태생적 문제점이다. 확장억제는 상대방(소련·북한)보다 압도적 우위의 핵무력 및 핵억제력을 보유한 상태에서나 가능하다. 억제의 기제가 작동되려면 3C(능력·의사소통·신뢰성)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3C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따라서 3C가 충족되어도 억제가 ‘자동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된다. 아무리 확장억제 공약의 확고함을 강조해도 한국·일본의 동맹국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미국의 ‘의지’를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았다고 해서 안보공약을 지키려고 워싱턴과 뉴욕을 핵보복과 대량살상에 내맡길 미국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확장억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핵무기로 실천하려는 이타적·성서적 개념,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작동이 거의 불가능한 개념이다.

셋째, 북핵 문제와 관련된 "양(量)의 질(質)로의 변환(Transformation from Quantity to Quality)" 현상이다. 아산연구원-RAND의 2021년 보고서에 의하면, 2027년까지 북한의 핵무기는 최대 200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파키스탄·인도·이스라엘의 핵보유고를 능가하는 양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도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핵군축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북한은 핵군축에 앞서 제재해제를 요구할 것이다. 군축협상은 대미(對美) 핵위협 감소에 기여할 것이나, 우리에게는 북핵 위협에 무한정 노출되는 인질 상태의 영속화라는 악몽의 시나리오다.

넷째, 북한의 제2격(second-strike) 능력 확보가 임박했다. 제2격 능력이란 상대의 제1격으로 심대한 피해를 입더라도, 살아남은 핵무기로 확실히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제2격 능력이 갖춰지면 상호확정파괴(MAD) 시스템이 작동된다. 북한의 대미 핵억제력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북한은 최근(4.14일) 고체연료 미사일인 화성-18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액체연료 기반의 화성-17형을 ‘제1격’, 고체연료 기반의 화성-18형을 ‘제2격’으로 역할을 분담시켜, 미 본토에 대한 핵공격 능력을 극대화시킬 전망이다.

끝으로, 핵 선제타격의 공식화이다. 작년 9월 북한은 「핵무력정책법령」에서 핵무기를 억제수단에서 선제공격 수단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북한이 자신들이 규정하는 ‘임의의 상황’에서 멋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는 점이다. 미국을 뜻하는 "적대적인 다른 핵 보유국"이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남한을 ‘핵선제공격’의 표적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NPT 규범, 한·미동맹과의 충돌, 경제제재 및 역내 핵도미노 우려 등을 제기하며 독자 핵무장에 반대한다. 그러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으로 "자체 핵보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비상한 안보상황에서 비롯되는 위기의식을 암시한다. 지금은 1차 핵시대(핵대결)나 2차 핵시대(핵확산 방지)를 넘어 3차 핵시대(핵전쟁 위험 고조)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핵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터부의 대상이었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는 기존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대전환의 시작은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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