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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 바람’ 잠잠해졌지만···재계 "제도 개선 시급"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03 16:22

‘주주제안 봇물’ 무분별한 압박에 사측 경영 부담↑



경영권 방어수단 없어 속수무책···"성숙한 문화 조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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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행동주의 펀드들의 무분별한 주주제안이나 경영권 공격 탓에 기업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재계에서 커지고 있다. 올해 주총 시즌 이들의 활동은 뚜렷한 성과 없이 찻잔 속 태풍에 그쳤지만, 에너지 낭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3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외 주요 행동주의 펀드들은 각 기업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대부분 패배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 주총장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액면분할, 주당 1만원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등 안건을 올렸지만 모두 부결됐다. 얼라인파트너스 역시 지난달 30일 JB금융지주 주총에서 주당 900원 배당금 지급을 제안했지만 사측(주당 715원)이 이겼다. 직접 추천한 사외의사 후보 선임 안건도 필요한 표를 얻지 못했다.

KT&G는 안다자산운용과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 두 곳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두 펀드는 현금 배당안, 사외이사 증원, 한국인삼공사 분리 상장 등을 요구했지만 지난달 28일 주총에서 완패했다. 같은달 24일 BYC 주총에서도 트러스톤자산운용이 배당금 증액, 액면분할, 자사주매입, 감사위원 선임 등 안건을 올렸지만 부결됐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일부 성과를 냈다. 소액주주들이 행동주의 펀드 편을 들면서 심혜섭 법률사무소 대표가 남양유업 감사위원으로 선임됐다.

재계는 행동주의 펀드 바람이 잠잠해졌음에도 안도보다 걱정을 먼저 하는 모습이다. 언제 어디서건 이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상법상 특정 주주가 지분 3% 이상을 가지면 기업에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상장사의 경우 1% 이상만 들고 있으면 된다. 다만 보유기간에 대한 규정이 없어 진입장벽이 다른나라와 비교해 낮은 편이다. 미국은 금액에 따라 1~3년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주주제안을 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민심 자체가 행동주의 펀드에 우호적으로 조성됐다는 점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SM엔터테인먼트 사태’ 등을 겪으며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낡은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주총에서도 행동주의 펀드들은 소액주주와 연대하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국회 분위기도 기업에 비우호적인 방향으로 조성되고 있다. 상법 이사의 충실의무(382조의3) 조항에는 ‘이사가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이에 주주가치 제고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이사가 충실해야 할 대상에 ‘주주’를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커지고 있다. 재계는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이 심하게 흔들릴 수 있따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 열풍에 명암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무분별한 주주제안’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경영참여 관련 문턱이 낮아지는 추세"라며 "당분간 이들의 활동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교수는 "주주제안 이후 소송을 이어가는 등 행동주의 펀드의 보폭은 넓어지고 있고 경영권 공격 용도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반면 회사 쪽에서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 방어할 제도가 전혀 없다"며 "주주제안 문턱 관련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가고, 경영권 방어 제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행동주의 펀드 자체에서 성숙된 문화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일침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는 특유의 재벌 문화가 정착돼 있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된 미국 등과 단순 비교가 힘들다"며 "(펀드들이) 단기적인 주가 흐름만 따르지 말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모형을 만들어 투자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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