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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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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값싼 에너지 잔치는 끝났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23 10:02

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작년 에너지 시장은 대혼돈 그 자체였다. 불과 3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폭락했던 에너지 가격이 2021년 하반기부터 급반전하더니 지난 겨울 지구촌 곳곳에서 난방비 폭탄이 터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유럽에서 예상 밖의 따뜻한 겨울로 에너지 재고가 평년 수준을 웃돌며 최근 에너지 시장이 안정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 특히 중국 경제의 향방 등 불안 요소가 도사리고 있어 올해도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에너지비용의 증가는 곧바로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며 세계 경제를 옥죄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럽중앙은행은 지난해 유럽 인플레이션의 약 50%는 에너지가격 폭등에 기인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비용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경험했던 것처럼, 실업증가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 증가로 발생하는 수요견인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고약하다. 더 큰 문제는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금세기 인류 공통 의제가 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탄소중립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식량 가격 인상 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다.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1880년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10년마다 평균 0.08도씩 상승했고 1981년 이후에는 10년마다 0.18도 높아져, 지표면 온도는 이미 18세기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약 1.2도 높아졌다. 기후변화는 홍수, 가뭄, 혹한, 폭우 등 기상이변을 초래하며 식량 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식량 가격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이유다.

둘째, 화석에너지 발 인플레이션(fossilflation)이다. 현재 전 세계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85%가 화석에너지다. 현대 문명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하루아침에 폐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등 서구를 중심으로 화석에너지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상태다. 그것도 2050년까지 화석에너지를 몰아내려고 한다. 탄소제로 즉,탄소중립 정책을 통해서다. 이 계획대로라면 화석에너지의 완전퇴출은 30년도 남지 않았다. 화석에너지 개발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어 공급능력은 갈수록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목표와 달리 화석에너지 수요를 극적으로 줄이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수급불균형이 만성화되어 화석에너지 가격은 수요의 지속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 지난해 전 세계가 경험한 에너지 위기가 그 예고편이다.

셋째, 친환경 발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다. 전 세계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에너지의 전기화와 전기 생산의 무탄소화로 특징지워지는 그린화에 이미 돌입했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는 그린화를 이끄는 대표적 녹색기술이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약 6배 많은 광물이, 해상 풍력발전은 가스 복합발전에 비해 7배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주요 광물 가격 인상 발 인플레이션이 예상하는 이유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가격이 과거 5년 평균 대비 5배 이상 폭등한 현상이 그린플레이션의 전주곡이다.

화석에너지에 의해 지탱되던 저비용 에너지 시대가 저물고, 고비용 에너지를 감내해야 할 탄소중립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국가별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탄소중립의 흐름을 피할 도리는 없다. 특히 주요 광물 자원은 물론이고 재생에너지 자원 마저 빈약한 우리나라는 화석에너지 시대에 이어 탄소중립 시대에서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에너지 비용을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시대에 대응하는 방법은 고비용 에너지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길 밖에 없다. 한전 등 에너지공기업의 적자로 지탱되는 에너지가격 인상 억제와 같은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으로는 고비용 에너지 시대를 넘을 수 없다. 이제 값싼 에너지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비용 에너지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체질 개선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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