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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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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보다 돈…역대급 실적 빅오일 "화석연료 늘리겠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2.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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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엑손모빌, 토탈, 쉐브론, BP, 셸 로고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재생에너지 투자 등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이겠다고 공언한 ‘빅오일’(글로벌 석유공룡)들이 화석연료 투자에 열을 다시 올리겠다는 전략으로 돌아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약속한 유럽계 석유공룡들이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며 "석유를 미래 먹거리로 내다보는 엑손모빌, 셰브론 등 미국 석유기업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탄소중립 열풍이 불면서 빅오일들의 온실가스 감축 전략은 새로운 경쟁력으로 여겨졌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버나드 루니가 2020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를 당시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2030년까지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을 40%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또 BP에 이어 셸, 토탈에너지 등의 에너지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투자의 장점에 대해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BP 지난 7일 2030년까지 석유와 가스 사업에 80억 달러를 새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BP의 화석연료 생산 감축량은 기존 40%에서 25%로 줄게 된다.

2020년 당시 "석유수요의 정점은 2019년으로 끝났다"고 강조했던 루니 CEO는 "석유 생산량이 2019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며 수요가 강하다"고 최근 블룸버그에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에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며 "이 시스템은 물론 탄화수소 시스템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에너지 기업들도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셸의 경우 올해는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지 않는 대신 천연가스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지난 주 발표했다.

와엘 사완 셸 CEO는 "재생에너지의 투자 속도가 빠른가? 전 세계로 봤을 때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천연가스가 절실하기 때문에 우리의 천연가스 사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프랑스 토탈에너지는 올해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을 2% 더 늘리겠다고 전날 밝혔다. 이 회사는 또 유럽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터미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와 관련, 씨티그룹의 알라스테어 사임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석유·가스 산업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빅오일들이 잇달아 화석연료로 눈길을 다시 돌린 배경엔 화석연료 수요가 앞으로도 강할 것이란 점이 확인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루니 CEO는 "3∼4년 전 업계 화두가 청정에너지, 저탄소 에너지였다면 오늘날엔 에너지 안보, 에너지 수급에 대해 더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완 CEO 역시 "에너지 위기의 종식이 선언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꼬집었다.

빅오일들이 지난해 화석연료 사업을 통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점도 태세 전환의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엑손모빌, 셰브론, 에퀴노르, 셸, 토탈에너지, BP 등 6개 빅오일들의 지난해 이익이 2021년 대비 2배 넘게 급등한 2190억 달러(약 276조 4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사상 최대 수준이기도 하다. 이들의 지난해 실적은 국제유가가 역대 최고가를 찍었던 지난 2008년보다도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이익 급증은 빅오일들에게 석유와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여지와 에너지전환 전략을 재고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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