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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KT, 포스코, 금융지주사 등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들을 향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반적인 지배구조 수준이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최고경영자(CEO) 승계 과정, 더 나아가 CEO가 선임된 이후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면서 사외이사들의 역할과 책임이 약해진 것이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대수술’하기보다는 CEO가 긴장 체계에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장치들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 당국, 내부통제 개선 예고…尹대통령 '관치논란' 차단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올해 금융회사의 경영투명성 제고, 내부통제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임원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해 금융권 내부통제제도를 개선하고, 임원 선임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정부는 2020년 6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금융사의 주요 임원 추천 과정에서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감사위원 및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결의에 대표이사 참석 및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주인이 없고 굉장히 중요한 그룹의 후계자 승계 또는 선임 절차, 과정이 과연 투명하고 합리적이고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의견을 조금 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른 선 대응책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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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 |
정부가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은 사외이사에 대한 자격과 역할을 강화하는데서 출발한다. 이사회는 경영진을 감시, 감독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함에도 CEO가 자신의 측근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이른바 ‘셀프 연임’ 나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금융당국의 이러한 기조에 힘을 보탰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 등 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기업들이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고 거기서 만들어진 지배구조로 경영진이 경영 활동을 하면, 기업과 사회의 비용 및 수익을 서로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은행에 대해서는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KT, 포스코, 금융지주사 등 이른바 ‘주인이 없는’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례 기억해야...CEO 인사개입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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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도심의 주요 기업체 건물들이 보이고 있다. |
다만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및 방향성을 두고 전문가들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정통한 금융권 한 전문가는 "KT, 포스코, 금융지주사를 두고 주인이 없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고, 해당 기업들은 정확하게 ‘지배주주’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간기업 CEO 선임은 오직 주주들의 몫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대통령이나 정부 측 인사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과거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한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압력으로 인해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해당 안건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부의하지 않고 내부투자위원회가 직접 결정했다. 홍 전 본부장은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지시해 국민연금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로 작년 4월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은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기초 아래 기업의 시스템을 수정, 보완하도록 가이드를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최근 정부가 (기업들의 CEO 선임에) 특정 인사를 배제하거나 선호하는 식의 행보를 서슴지 않으면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사 개입 혹은 관치라는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색안경을 끼고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대수술’하기보다는 기존에 구축된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인지,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미세조정이 필요한지 등을 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CEO 승계절차 등 지배구조, 이사회 규정 등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잘 갖춰져 있다"며 "문제는 이러한 규정들이 CEO와의 이해관계 등으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례로 금융지주사 회장은 취임 초기 과거 자신과 회장직을 두고 경쟁했던 인사들을 경영 능력, 전문성 등과 관계없이 조직에서 내보내고, 자신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을 은행장으로 선임하는 식의 행보가 빈번하기 이뤄진다"며 "금융지주 회장 입장에서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만 장악하면 장기 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에 (친분 중심의 인사 체계),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논란 등이 끊이질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업문화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