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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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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패러다임 전환 필요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1.19 10:29

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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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전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규모의 발전설비를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경제성장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에너지 섬’이라는 지리적·물리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품질을 유지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송·배전 설비망을 운영하고 있음은 자부할만하다.

이러한 성과는 정부정책 담당자와 발전산업 종사자들의 헌신과 노력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또한 2002년부터 전기사업법에 따라 2년 주기로 15년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여 선제적으로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력계통을 보강해 온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전력산업이 전 세계적 당면과제인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석탄과 가스발전 등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중앙집중형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오는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약 44%를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매년 전력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함과 동시에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주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이에 대한 고충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석탄발전은 줄이되 원전은 확대하고 계통에 부담을 주는 신재생은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을 중심으로 원전 제로화 정책에서 원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신규 발전설비 투자는 재생에너지에 집중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세계에너지전망(World Energy Outlook)에 따르면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20년 28%에서 2030년에는 약 42%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국토의 물리적 제약, 기술력, 비용 등의 문제로 재생에너지 속도를 늦춰야 한다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재생에너지가 전력수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그와 관련된 계통·기술·제도·시장 등에 대한 빠른 보완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원전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신재생을 확대하는 것이 좋을지 여부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라보기 보다는 소비자 효용과 국가 이익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제는 무엇으로 전력을 생산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전력을 공급하고 소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전력계통과 사회적 수용성 문제를 생각해 보자. 동해안-신가평 등 주요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면서 올해 가동 예정인 신한울 2호기와 강릉안인 2호기 그리고 삼척화력 1·2호기는 생산된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보낼 수가 없다.

전력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건설계획이 있거나 진행 중인 20MW 이상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중 전력계통과 수용성 등의 문제로 준공이 미정인 발전소 비중이 약 27%(5.2GW)에 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동인 중 하나인 데이터센터의 확대는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데이터센터만을 별도로 구분하여 전력수요를 전망할 정도로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매우 중요하다. 데이터센터는 2021년 142개소에서 2029년에는 234개소로 증가하고 대다수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수도권의 전력 송·배전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이제는 발전소 건설 못지않게 생산된 전기를 어떻게 필요한 곳으로 적기에 보낼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의 경우 전력수요가 집중된 지역 보다는 오히려 발전소 근처에 입지하도록 유도해서 최소한 송·배전망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력이 핵심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아 갈수록 전력과 연계된 열에너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전기와 열에너지를 별도로 구분하여 수급계획을 세웠지만,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열과 전기를 동시에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열병합발전소 사례처럼 열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전기를 공급할 수도 있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전소 배열을 열에너지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제는 발전소를 어디에 얼마나 건설할까 보다는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전기를 적재적소에 어떻게 보낼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비용을 어떻게 소비자와 생산자가 공정하게 부담할 것인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아울러 에너지원별 장막을 벗어나 보다 종합적이고 융합적인 관점에서의 전력정책 수립이 요구된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들쭉날쭉 하는 2년짜리 법정계획에서 벗어나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전력수급기본계획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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