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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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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전쟁’ 심화... "한국 맞춤형 전략으로 접근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1.12 14:28

’칩4’아닌 ‘팹4’ 제안…생산 시설 내재화가 핵심



미국 대응 각론 대응 필요…국내 소부장 육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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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CHIP4發 도전, 한국 반도체 산업 위기의 해법은?’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강여울 외교부 동아시아경제외교과장, 이승헌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장,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 최필수 세종대학교 교수,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에너지경제신문 이진솔 기자] 미국이 중국 배제하고 자국 중심으로 세계 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품귀 현상이 세계 공급망을 휩쓸며 반도체가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가 걸린 사활적 문제로 격상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주도로 일본,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논의하는 ‘칩4(CHIP)’ 구상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중국이 반발하며 갈등이 발생할 것이란 불안감도 나온다.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CHIP4發 도전, 한국 반도체 산업 위기의 해법은?’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 선택의 문제라는 프레임에 갇히기보다 한국 맞춤형 전략을 세워 각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발제를 맡은 김준형 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산업·통상·외교를 관통하는 분야로 반도체를 내세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불거진 반도체 수요 불균형 해소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동시에 중국 첨단기술 개발을 저지할 전략이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제조 공급망을 육성하려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대표적인 법안은 지난해 9월 발효된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2022)’이다. 767억달러 규모 보조금과 세액 공제 혜택을 반도체 기업에 제공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을 늘리고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에 1669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에는 미국을 시작으로 한국, 대만, 일본 등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갖춘 동아시아 3대 국가가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논의하는 ‘칩4’ 구상이 대두됐다. 김준형 교수는 언론에서 사용하는 ‘칩4 동맹’ 표현은 출처와 기원이 불분명하며 ‘팹(FAB)4’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FAB은 반도체 생산 시설인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을 줄인 단어다. 팹4에는 반도체 분야 전체가 아닌 생산, 제조 시설을 내재화하는데 방점이 찍혀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 일본, 대만과 공조를 통해 대중 생산 의존을 벗어나는 동시에 해외, 특히 아시아에 편중된 것을 축소하고 공백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증대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은 지난 10일 멕시코, 캐나다와 손잡고 공급망 재편을 북미 중심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3국이 반도체 산업 정책 육성을 논의하는 포럼을 구상하기로 발표했다.

다만 김준형 교수는 ‘팹4’는 배타적 대중 반도체 동맹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재로선 과잉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부품과 장비 등 원천 기술을 미국과 대규모 시장인 중국 간 양자택일의 문제로 현상을 바라볼 경우 정확한 대응에 나서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그는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 부활과 중국 디커플링의 안정적 구축을 위해서는 한국 기술이 필요하고 중국 역시 한국 도움 없이 반도체 굴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리스크이자 지렛대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최필수 세종대학교 교수는 미국의 대중 규제에 따라 다른 접근법을 제안했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특정 중국 기업에 대해 규제하는 방식과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 금지처럼 중국 전체를 봉쇄하는 전략 등 두 가지 유형으로 이뤄진다"며 "전자는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협조할 필요가 있지만 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생산활동에 차질을 줄 수 있어 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칩4는 미국이 현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출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유효하다"며 "이후에는 반도체 제조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이 있어야만 미국과 협력할 수 있고 아니면 중국처럼 소외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제조 시설이 부족하고 우리는 제조 기술만 갖추고 있다"며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술력을 미국과 유럽, 일본이 요구하는 수준까지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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