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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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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전기] 가정·산업·농업용 급속 연료대체…열대과일 재배조차 전기난방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1.16 16:29

값싼 에너지 후유증…1차 에너지 석유·석탄 사용 줄고 2차 에너지 전기 소비 급증



전기, 효율 낮은데도 값 싸서 사용 갈수록 늘어…에너지 소비구조 왜곡에 악용 사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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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공장 전기 고로.


국내 에너지 과소비와 비효율이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에너지 과소비와 비효율을 줄이는 것은 경제 사회 전반의 경쟁력 강화이자 탄소중립 등 기후변화 대응 노력으로 꼽힌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방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기획시리즈를 마련, 상·중·하 세 차례에 걸쳐 국내 에너지 과소비 및 비효율의 실태와 문제점, 그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낮은 국내 전기요금에 따른 석탄·석유·가스 등 1차 에너지원의 전기화로 산업·공업·농업 등 전 분야에서 비효율적 대체소비가 발생, 국가적 에너지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16일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에너지원별 난방 효율의 경우 전기가 38%로 등유(80%)·도시가스(90%)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기난방의 효율이 등유 또는 도시가스 난방의 절반을 밑돈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를 이용한 난방·건조시 등유 이용 대비 에너지 사용량은 약 2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는 효율면에서 이처럼 석유·가스 등 에너지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만 그 활용이 폭 넓게 이뤄지고 있다. 소비 에너지로서 다른 에너지를 빠르게 대체해 나가면서 소비량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과소비 또는 낭비 못지 않게 에너지 소비구조의 비효율을 낳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0년간 전 종별 전기사용량은 무려 두 배 이상(113%) 증가했다. 가정부문에서는 1990년 중·후반부터 가스·전력이 주 에너지원이 됐으며, 가전기기의 보급 확대로 전력소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가정용 에너지원별 소비 비중을 보면 지난 1992년 석유(50.8%)와 석탄(28.8%)가 79.6%, 전력(10.8%)과 도시가스(8.8%)는 19.6%였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비중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2019년엔 석유(10.6%)와 석탄(2.4%)가 13.0%, 전력(29.8%)와 도시가스(49.5%)가 79.3%를 나타냈다.

상업·공공부문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석유와 석탄은 각각 53.9%와 4.6%, 전기와 천연가스는 각각 33.3%와 8.0%였다. 그러나 2019년 석유와 석탄은 각각 7.0%과 0.2%로 대폭 쪼그라든 반면 전기와 천연가스는 각각 68.%와 20.9%로 높아졌다. 전기와 천연가스 비중이 각각 두 배 이상 커진 것이다. 난방·온수용으로 소비되던 석유가 전력으로 대체되고, 주로 전력을 사용하는 냉방용 설비는 에너지수요 증가로 전력소비 증가를 가져온 것이다.

농림어업용도 연료대체가 뚜렷하게 이뤄졌다. 1992년 석유 85.4%, 전기 8.1%였으나 2019년엔 석유 57.3%, 전기 40.0%로 나타났다. 1990년대 석유에 크게 의존하던 것이 2019년엔 석유 비중이 줄고 전기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농업용 설비의 연료대체(석유→전기)로 2020년 전력소비량 2000년 대비 20년 새 3.5배(249%)나 늘었다.

부문별  전기화 추이(%)
구 분‘92년‘01년‘13년‘16년‘19년
가정부문10.816.725.126.729.8
상업, 공업 부문33.356.365.867.168.2
농림어업 부문8.111.730.63840
출처 : 2020년도  에너지총조사보고서(산업통상자원부)

특히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이 다른 부문에 비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이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이어가는 것은 철강과 석유화학·반도체 등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제조업 에너지 소비가 약 90%를 차지하며, 그 중에서도 철강과 석유화학·정유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에너지 소비량 비중이 약 80%에 이른다. 특히 30대 기업의 39개 사업장이 산업부문 에너지소비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사업장은 에너지를 연간 20만TOE 넘게 소비하는 대규모 시설들이다.

다만 전기요금이 저렴하다 보니 전기 에너지 의존도가 커지면서 에너지 소비구조 왜곡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요금 부담이 적은 산업용 경부하 요금 적용으로 1차 에너지 사용이 가능한 난방·생산설비까지 전기를 사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대용량 고압 전기를 이용하는 제조 대기업들은 자가발전기 가동 및 조정조업 등이 용이한데도 경부하 요금혜택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는 게 한전측의 설명이다.

전체 전력소비량의 약 55%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전기·열 부문 이산화탄소(CO2) 배출량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철강제조의 경우 석탄·경유로 가동되던 용광로가 전기로 교체되면서 연료비 절감, 작업장 환경개선이 이뤄졌지만 그만큼 전기 사용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현장에서도 경유 크레인을 전기 크레인으로 교체하면서 연료비 절감, 대기오염물질 배출 감소 효과가 있었지만 전기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농사용도 특별히 다를 게 없다. 특히 등유 수요가 에너지효율이 낮은 전기 소비로 대체되면서 농사용 전기사용량이 급증, 불필요한 에너지소비 및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대표적 악용 사례는 △일반용 적용 대상인 유료 낚시터, 매점, 사무실 등을 운영 △시설 재배용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이용 △저온창고, 건조기(농사용 적용 대상)에 냉장고, 에어컨 등 연결 사용 △인접 카페 이용객의 화훼 관람 △휴식 목적으로 비닐하우스 내 관상용 화훼작물 재배시설에 농사용 전기 사용 △심야시간대 축열식 난방, 전기차 충전기에 심야전력 사용 등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 6월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 효율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다소비 8대 업종, 30대 기업의 에너지효율 혁신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제조업의 에너지원단위가 소폭 개선되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미흡하다. 에너지원단위는 경제활동에 투입된 에너지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에너지 원단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단위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에너지를 더 많이 쓴다는 뜻이다.

2019년 기준 국내 제조업의 에너지원단위를 ‘100’으로 봤을 때 독일은 66을 기록했고, 일본과 영국은 각각 82와 80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다소비 업종의 에너지원단위는 2011~2019년 동안 1~2% 가량 증가하면서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30대 기업의 사업장 에너지원단위도 대부분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또한 전기요금과 인센티브, 제도 운영 등 3가지 측면이 에너지효율 투자의 성과를 창출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전기요금이 낮고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에너지 효율화 투자 시장에 가격 신호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전기요금이 비싸질수록 효율화에 따른 성과도 높아지는데, 전기요금이 싸고 경직돼 있어 수요 효율화 혁신과 신산업 비즈니스 창출이 지연됐다는 설명이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를 많이 사용해 요금이 부담이 된다면 기업이나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감축노력을 하고 에너지효율 관련 투자도 늘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전기를 싸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전기요금이 낮으니 절약은 물론 효율 개선에 대한 인센티브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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