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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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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폴란드’ 낭보, 원전수출에 국가적 역량 결집 계기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1.06 09:00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최대 약 40조 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형 원전(APR1400)의 수출 물꼬가 터졌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폴란드 최대 민간발전사 제팍 그리고 폴란드 전력공사가 지난달 31일 최대 원전 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협력의향서에 서명을 했다. 물론 아직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계이지만 폴란드 정부가 본 계약 전까지 경쟁 입찰을 부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3년 만의 쾌거가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수출은 상대적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폴란드로서는 정부 간 협상 형태로 진행된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권을 미국에 주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폴란드 1단계 원전 사업자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결정된 배경이다.

하지만 바로 이어 3일 만에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2단계 사업의 첫 번째 협력대상국으로 우리나라를 점 찍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민간 주도 사업은 그 특성 상 정부협상과 달리 철저히 기술력과 경제성을 따져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번 수출 물꼬를 틀 수 있었던 이유를 세 가지만 간추려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사실 최근 건설된 원전 중 공기와 예산을 준수한 사례는 UAE에 우리가 건설한 바라카 원전이 유일하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1996년에서 2016년 사이 건설된 83기 원전의 평균 공기는 190개월이었으나 우리나라가 같은 기간 건설한 13기의 공기는 56개월로 약 1/3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의 원전건설 경쟁력을 입증하는 통계다.

이에 더해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은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과 미국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인증을 모두 취득함으로써 기술력과 안정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둘째 이유는 세계 원전 수요 증가에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잔뜩 움츠러들었던 원전 시장은 최근 탄소중립 조류에 힘입어 훈풍이 불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실질적인 탄소중립의 중요 수단으로 재평가하고 원전 확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110기의 원전이 계획 중이고, 330기의 원전이 제안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이 442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신규 원전 건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탈원전 정책의 폐기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원전은 안전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일축하고, 국내 원전 생태계 붕괴를 수수방관하는 나라의 원전을 수입할 멍청한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원전 수입국은 미래 40년 이상 사용할 원전을 구입하려는데, "한국 원전은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며 과거 타령만 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난처함이 측은하기만 하다. 이번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가 없었다면 원전의 수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올해 말까지 자금 조달 방안, 총예산, 공정 기한 등을 포함한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의 원전사업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금융조달 능력에서 수주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원전건설이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고 고위험, 장기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이집트 원전의 전체 사업비의 85%에 해당하는 25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연 3% 저금리 차관을 제공하면서 수주에 성공한 반면, 당시 우리나라는 연 8% 이자율로 80억 달러 조달을 제안하여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저금리 금융 제공 여부가 최종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차원에서 작년 말 지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원전을 제외하고 밀어붙였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이번 정부에서 원전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전이 녹색분류체제에 포함되지 않으면, 저금리 자금 조달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은 국가 차원의 거래다. 사업자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가의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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