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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폴란드 정부, 기업 관계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원전협력을 위한 한-폴 정부간 양해각서(MOU) 및 기업간 의향서(LOI)를 각각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표트르 보즈니 폴란드 발전사 ‘제팍’ 사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 지그문트 솔로쉬 제팍 회장, 보이치에흐 동브로프스키 폴란드 전력공사(PGE) 사장.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폴란드 원전 수출과 관련, 원전업계의 기대감이 부풀고 있는 가운데 자금조달과 단가를 제대로 따져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논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협상이 원활치 않을 경우 언제든 사업이 중단될 수 있고 섣불리 이 사업에 참여했다간 헐값 참여 논란에 휩싸일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와 기업이 막대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2일 원전 반대 단체 등 일각에선 폴란드 민간 원전 발주사 제팍(ZE PAK)은 순자산 4000억원에 불과한 기업이라 본 계약이 체결된다 해도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우리 국책은행들이 동원돼 국가적인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3년 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라카원전 수출 때보다 수주단가가 20~41% 낮아 헐값 수주 논란 제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한국과 폴란드가 지난달 31일 양국 정부간 원전협력 양해각서(MOU)와 양국 기업간 의향서(LOI)를 각각 체결한 뒤 이틀 만이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해당 프로젝트의 자금조달 방법, 향후 운영계획 등 수익성이나 구체적인 수주 금액, 공사규모, 기간 등에 대해 아직 양국 정부 및 기업간 합의가 완료되지 않았다. 이번 LOI체결을 토대로 내년까지 양측이 협상을 지속할 계획이다.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의 석광훈 전문위원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건설단가는 2009년 한수원이 UAE에 ‘덤핑 가격’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수출할 때의 메가와트(㎿)당 건설단가(332만달러)보다 20% 적고, 당시 건설단가의 현재가치(452만달러)와 비교하면 41%나 적은 엄청난 ‘출혈 입찰’"이라며 "향후 막대한 손실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 ‘원자력안전과미래’의 이정윤 대표는 "공기업인 한수원이 정부의 원전 10기 수출 목표에 따라 원전 수출 실적내기에 나섰다가 손실을 내게 되면 그 손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수밖에 없다"며 "무리한 원전 수출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이같은 지적을 반박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EPR(프랑스원전)이나 AP1000(미국원전)보다 싼 것은 당연한 것이고 UAE보다 싸게 내놨다는 건 금시초문"이라며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제소(원전 지적재산권 소송), LOI와 관련한 이같은 반응은 이분들의 국적을 의심케 한다"고 주장했다.
정범진 교수는 이어 "과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 중단 측이 2009년 이후 해외 원전 수주가 없었다고 조롱하기에 ‘그러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적도 있다"며 "원전 산업계가 연구개발하고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폄하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데 거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겠나.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제팍이라는 폴란드 민간기업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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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원전 APR1400 건설이 추진되는 퐁트누프 석탄화력발전소 부지. 한국수력원자력 |
이번 폴란드 원전 수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측은 "제팍은 순자산이 4000억원에 불과한 기업이고, 이번 건은 본 계약이 체결된다 해도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을 테고, 결국 우리 국책은행들이 동원돼 국가적인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며 "또 MOU를 남발하고 있는 제팍은 얼마 전 오스트리아와 체결한 SMR(소형모듈원전) 건설 MOU를 우리와 MOU를 체결한 날 해지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승신 C2S컨설팅 대표는 "좀 가려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오스트리아건은 SMR인데 아직 상용화된 나라가 없기도 하고, 한수원이 짓겠다고 한 한국형 원전 APR1400은 현재 한국에서 잘 돌아가는 원전이니 당연히 한수원과 LOI를 맺었으면 오스트리아와는 해지하는 게 맞다. 이걸 마치 LOI를 신의 없이 내팽개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도 "저렇게 낮은 단가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또 석탄화력발전을 대부분 원전으로 바꿔야 하는 폴란드 상황 상 SMR은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이번 프로젝트에서 현재 지분은 폴란드가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로 결정한 것 같다"며 "지급보증을 PGE(폴란드 전력공기업)와 폴란드 정부가 서기로 한 만큼 제팍 때문에 엎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산업부와 한수원 측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향후 운영계약 등 수익성은 일년 정도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물론 탈원전 폐기, 원전 10기 수출 등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성과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며 "특히 지난 주 폴란드 정부가 발주한 원전 6기 프로젝트는 경쟁상대인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가져간데다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에 원전 핵심기술 관련 지적재산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이창양 산업부 장관을 비롯한 원전 담당 공무원들의 교체설이 돌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더욱더 신중하게 국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자금 조달은 수출입은행이 상당 부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그 밖에도 다양한 소스를 동원할 예정"이라고 우려를 불식시켰다. 한수원이 참여하게 되는 폴란드 원전 운영사의 경우 폴란드 측이 대주주 지위를 확보할 방침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도 "기존 화력발전소에 원전을 짓는 것이어서 주민 수용성 측면에선 관광지 인근에 있는 폴란드 정부 주도의 원전 건설 사업(웨스팅하우스 수주)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LOI를 다 된 밥처럼 홍보하는 정부나 언론들도 문제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불경기에 이런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잘 되기 바라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