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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적자 누적 등 경영악화 상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사장 정승일)이 최근 가뜩이나 경색된 금융시장의 블랙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기업 한전이 자금시장의 왜곡을 불러 연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민간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기요금 현실화 등을 통한 한전의 조속한 경영 정상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가 물가안정 등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금융시장의 자금순환까지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27일 한전과 금융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전은 최근 채권발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전은 올해 최대 40조원의 적자가 예상되면서 올해 10월까지만 무려 23조원의 채권을 발행하면서 채권시장을 집어 삼켰다.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여전히 최소 10조원 이상의 추가 채권발행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됐다. 채권발행이 막힐 경우 이 금액은 고스란히 가정과 기업들에게 전가될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 가구수가 약 2073만이나 가구당 연간 50만원 정도를 추가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정용의 비중이 크지 않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니 결국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요금수준 현실화와 에너지원간 상대가격 구조 개선을 위해 단계적 요금 인상으로 원가회수율 100%를 달성해야 한다. 자원배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에너지원간 상대가격 조정 등 전기에 대한 직접과세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가격 왜곡은 에너지 소비 비효율을 초래해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전력은 특히 가격왜곡이 발생하는 경우 다른 에너지원보다 큰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지적하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촉구했다. 그는 "비합리적인 에너지 소비구조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며 "정부 규제는 시장실패를 개선해야 하나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제적 요인보다 정책적 판단이 우선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신용등급 AAA의 한전이 6%에 육박하는 금리를 내세우면서 다른 기업들까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중에 흘러야 할 돈이 모두 한전 적자 메우는 데 쓰인 셈이다. 정부가 물가와 민생안정, 산업경쟁력 유지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명확함에도 누른 결과가 자본시장 전반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는 그마저도 발행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 25일 3년물 채권발행이 미달됐다. 한전은 상반기까지 14조3033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면서 현금 유입 끊겨 채권 발행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상태다. 적자 심화 속 채권 발행이 안되면 전력을 제때 구매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존 채무 상환 지연, 전력 인프라 운영 중단 등 사태로 이어질수도 있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답이지만 정부는 전력도매가격(SMP)상한제 등 오히려 기업들을 옥죄는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은 여전히 최소 10조원 이상의 채권발행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선진국들 가운데서도 저렴한 수준이며 소비량은 최상위권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h(1㎿h=1000㎾h)당 103.9달러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 31위였다. 멕시코(62.9달러), 노르웨이(82.6달러), 튀르키예(터키·102.7달러)에 이어 네 번째로 저렴한 수치다. OECD 평균 전기요금 170.1달러의 61% 수준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곳은 독일(344.7달러)이었다. 일본의 전기요금은 ㎿h당 255.2달러로 한국의 2.5배 수준이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4.3달러로 OECD 34개국 중 22위였다. OECD 평균(107.3달러) 대비로는 88% 수준이었다.
반면 한국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전력 사용량은 1만134㎾h로 캐나다(1만4098㎾h), 미국(1만1665㎾h)에 이어 3위였다.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인구 1인당 전력 사용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전기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