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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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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원전에 길 열어준 K-택소노미에 거는 기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10.06 10:10

조병옥 한동대학교 객원교수/전 한수원 품질안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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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 한동대학교 객원교수/전 한수원 품질안전본부장

오래전에 아마존에서 투자관련 서적분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고릴라 게임’이 있었다.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첨단기술 산업에서 시장을 싹쓸이하는 고릴라와 어느 정도 성장하다 말게 될 침팬지, 얼마되지 않아 사라질 원숭이가 섞여 있다고 한다.

시장의 승자인 고릴라가 되는 비결은 기술표준을 만들어 경쟁사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윈도우로 컴퓨터 운영체제의 표준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스마트폰시장의 표준을 만든 애플,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개발한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대표적인 고릴라이다.

기술표준을 주도하면 고릴라가 될 수 있지만 기술표준에서 탈락하게 되면 원숭이가 되고 만다. 어떤 산업분야가 친환경 산업인지, 녹색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그린 텍소노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이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것은 한국 원전 기술 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원전산업이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어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유럽은 최악의 가뭄으로 다뉴브강이 말라 2차대전당시 침몰한 독일 군함 20척이 모습을 드러냈고, 한반도에는 ‘힌남노’와 ‘난마돌’과 같은 초강력 태풍이 발생했다.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전 세계는 생존차원에서 지구의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줄이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그린뉴딜 정책과 연계된 새로운 경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기후변화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EU 택소노미를 개발하여 녹색경제활동을 정의하고 녹색금융을 통하여 녹색 프로젝트나 녹색 기술을 지원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금년 7월에는 그간 논란이 되었던 원자력을 EU 택소노미에 추가로 포함하였다.

우리나라는 2020년 7월에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선포하였다. 2021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였으며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의 감축목표’를 정한 바 있다. K-택소노미는 2021년 12월에 발표되었으며 금년 9월에는 원자력발전이 포함된 분류체계 초안이 공개되었다.

K-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 6대 환경목표와 69개의 경제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전과 관련 경제활동으로 ‘원자력 핵심기술개발’ ‘원전 신규건설’ 및 ‘원전 계속 운전’ 등이 포함된다. ‘원자력 핵심기술’은 원전의 안전성 향상과 국가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장기적 연구 개발이 필요한 연구과제로서 SMR, 차세대 원전, 핵융합 등이 포함된다.

‘원전건설’ 및 ‘계속운전’은 환경피해 방지와 안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2045년까지 허가를 받는 설비를 대상으로 했으며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및 ‘고준위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세부계획과 계획실행을 담보할 수있는 법률제정’을 조건으로 달았다.

K-택소노미는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서 수립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EU에 비해 부족한 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EU를 넘어서서 세계 에너지환경 정책을 이끌어 가려면 EU보다 더 공격적이고 글로벌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2050년 이전 운영 착수 ▲사고저항성 핵연료와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서는 금융지원뿐 아니라 기술의 사업화 및 판로까지 지원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순수 그린전기(GE 100) 생산 설비 및 제품에 대한 지원 강화(그린 스탬프 발행) 등이다.

원자력이 EU 및 K-택소노미에 포함된 것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원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 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자력이 택소노미 틀안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되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EU나 한국에서 조성된 녹색금융자금을 원전사업자들이 끌어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자금조달이 쉬어져서 신규건설 사업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또한, 핵심 기술개발 예산을 지원받아 방폐물 최소화 기술, 수소생산 원자로, 사고저항성 핵연료 등의 연구개발을 통한 원전설비의 안전성 및 신뢰도 향상이 가능하다. 아울러 원전 수출사업 투자에도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동유럽의 체코, 폴란드처럼 기술과 자금이 필요한 원전 도입 희망국은 EU와 유사한 택소노미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와 협력하면 녹색기술 및 녹색사업자금 조달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자력이 포함된 K-택소노미는 2050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원전의 안전성과 수출 경쟁력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공청회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K-택소노미에 대한 많은 응원과 함께 부정적 견해도 제법 들린다. 원자력이 포함되는 것을 반대하거나 원자력의 안전과 환경에 대한 인정기준이 EU에 비해 미흡하다는 의견과 원자력에 녹색자금이 많이 흘러가면 재생에너지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의견 등이다.

정부는 전문가, 시민사회, 산업계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서 세계 최고의 K-택소노미가 수립되도록 노력하고, 순그린에너지(GE100)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활용을 통하여 안정적인 전력공급계획과 수출동력을 세우며, 글로벌 탄소중립시대를 이끌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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