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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지난달 15일 국내 전력 사용량 1위 삼성전자가 ‘신환경경영전략’을 통해 ‘RE100’ 가입을 천명하였다. 이런 삼성전자의 RE100 가입 소식에 ‘친’ 재생에너지 진영은 한층 고무된 것 같다. 특히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7.5% 수준이라 RE100 달성이 쉽지 않다는 언급에 힘입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1.5%로 현행 계획보다 낮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때를 만난 듯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급목표 축소로 기업들이 RE100을 위한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연간 1만 8410GWh 규모 전력수요자인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RE100을 한다는 것은 한전으로부터의 수전(受電) 대신 직접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해 자가 소비하거나, 전력구매계약(PPA) 등을 통해 다른 재생에너지 사업자로부터 조달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람과 햇볕 조달에 문제가 없다면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한전 수매물량, 즉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PRS) 물량 중심의 보급목표와는 별개로 충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체 조달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할까. 이미 미국, 유럽 등 해외 생산시설에서는 RE100을 달성, 향후 5년 내 모든 해외 생산시설에 달성하겠다는 계획에 비취어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만일 국내 RE100도 진심이라면 말이다.
원론적으로 수요와 공급은 주어진 가격에 대응되는 구매 및 판매 의사로, 수요와 공급 간의 일치는 결국 가격이 결정한다. 현재 재생에너지를 한전이 수매할 때, 전력 도매단가(SMP)와 보조금 성격의 신재생 공급인증서(REC) 판매금액까지 함께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보상된다. 그래서 한전 수매를 포기하고 RE100 기업에 공급하면 이런 보상가격을 포기, 기회비용으로 계상된다.
다시 말해 RE100 기업도 결국 재생에너지 보상가격을 내야만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어, 설사 RPS 시장과 별도의 RE100 시장이 개설되더라도 사실상 기준가격은 REC가 포함된 보상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현행 보상가격이 월등히 높다는 점에서, 사실 국내 RE100은 재생에너지 조달이 문제가 아니라 애당초 해당 가격을 주고 구매할 만한 수요 자체가 부족한 것이 문제이다. 대외적으로 RE100을 선언해도 실제 실행 의지는 없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내 RE100 활성화는 재생에너지 보상가격 인하에 달렸고,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낮추어야 한다. 더욱이 RE100이 수출이나 기업 이전 등 국제무역과 연관되어 있다면 친재생에너지 진영이 주장하듯 국내 발전단가를 인하, 국내에서 그리드 패리티를 이루는 것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다른 국가들의 발전단가(또는 가격)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도 충분히 저렴해야, RE100이 국내 기업의 수출경쟁력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
국제무역이론에서 발전단가 등 상품의 생산단가는 부존자원이나 자국 내 시장규모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미 일조량이나 풍속 등 좋은 입지 여건을 갖춘 토지 등 풍부한 부존자원과 이를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한 중국의 자국 내 시장규모야말로, 중국이 재생에너지 자체를 넘어 태양광·풍력 관련 소재·부품·제품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며, 우리가 발전단가를 낮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중국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호주나 캐나다, 사우디 등은 부존자원이 풍부하지만, 규모화에는 한계를 지닌 협소한 자국 시장규모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수출을 위해 매개체인 청정수소 개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쉽지만 우리나라는 부존자원·국내 시장규모 모두 열위에 있다. 그만큼 RE100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렇다면 굳이 RE100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 여건에 맞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가령 우리에게 더 유리한 원전 등 무탄소 전원을 100% 사용하는 CF100(Carbon Free 100)으로 전환을 검토하는 것도 좋은 방편일 수 있다. 혹여 재생에너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힘들다면, RE100의 범위를 국산 재생에너지를 넘어 청정수소 형태로 수입한 해외 재생에너지까지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