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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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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주도 ‘ARM 빅딜’…한미 동맹군 뜬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9.22 15:33

이재용, 다음달 손정의 회장 만나 인수 논의



SK하이닉스·퀄컴·인텔 등과 컨소시엄 구성할듯

삼성

▲삼성 평택캠퍼스


[에너지경제신문 이진솔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음달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암) 인수를 논의한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퀄컴, SK하이닉스 등 굵직한 반도체 기업들과 ‘동맹군’ 형태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소프트뱅크가 지난 2020년 ARM을 미국 앤디비아에 매각하려다 각국 규제 당국의 반대로 좌절되면서 소프트뱅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수가 이뤄지면 오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선두를 노리는 삼성전자로서는 약점으로 꼽히는 반도체 설계 분야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21일 중남미와 유럽 등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자리에서 출장 기간 ARM 인수를 위한 경영진과 만남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ARM과 하지 않았지만 다음달 손 회장이 서울로 올 것"이라며 "아마 그때 그런 제안을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ARM은 삼성전자와 퀄컴 등 반도체 기업에 반도체 설계도에 해당하는 ‘아키텍처’를 판매하고 사용료를 받는다. 삼성전자 ‘엑시노스’나 퀄컴 ‘스냅드래곤’, 미디어텍 ‘디멘시티’ 등 유명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도 ARM 아키텍처에 기반한다. ARM을 건너뛰고 시스템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배력이 막강하다. 최근에는 사용료가 필요 없는 오픈소스 기반 아키텍처 ‘리스크 파이브(RISC-V)’가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AP 시장에서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2016년 ARM을 314억달러(약 44조2300억원)에 인수했다. 연산을 담당하는 시스템반도체가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벗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으로 확대되는 사물인터넷(IoT) 추세를 내다본 결정이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가 잇따른 투자 실패로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서 매물로 내놓게 된다.

문제는 ARM이 한 기업 아래로 들어가 설계자산을 독점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2020년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추진할 때도 주요 반도체 기업이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엔비디아가 제시한 인수 금액은 400억달러(약 56조3500억원)에 달했으나 미국과 영국 경쟁 당국에서 부정적 의견을 내놓으며 올해 2월 인수가 무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손 회장과 만날 예정임을 직접 거론한 점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ARM은 삼성전자 주요 인수 후보군으로 꼽혀 왔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후퇴한 사이 실질적인 논의가 추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활발한 경영 활동에 나선 이 부회장이 ARM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간 M&A는 가급적 비밀리에 진행되는 점이 관례인데 이 부회장이 직접 ARM과 소프트뱅크를 거론했다는 점은 특이한 일"이라며 "인수 논의가 어느 정도 진척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엔비디아가 인수를 시도했다 무산된 전례가 있는 만큼 삼성전자 단독 인수는 어려울 것으로 점친다. 다만 인텔이나 퀄컴, SK하이닉스 등 직간적적으로 ARM에 관심을 보인 기업을 규합해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키텍처 사용료를 갑자기 올리거나 사용권을 제공하지 않는 등 독과점 우려를 우회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ARM 인수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꼽힌 설계 능력을 단시간에 끌어올리는 계기로 활용하거나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지만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는 경쟁사를 견제할 목적으로 인수를 추진할 여지도 있다.

ARM은 엔비디아 인수가 무산된 이후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내년 3월까지 상장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다음달 이 부회장은 손 회장을 만나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 일정 등을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 부회장은 이번 해외 출장을 통해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협력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출장의 주요 목적은 오지에서 열심히 회사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근무하는 우리 임직원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RE100’ 가입을 골자로 하는 ‘신환경경영전략’ 등 굵직한 현안을 해결해내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연말 회장 취임에 나설 가능성을 점친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회사가 잘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jinsol@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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