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의찬 세종대 기후변화특성화대학원 책임교수 |
‘힌남노’에 이어 18∼19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제14호 태풍 ‘난마돌’로 인해 남쪽 지방을 중심으로 인명과 재산에 피해가 발생했다. 경로와 위력에서 힌남노보다는 한반도에 훨씬 덜 위협적이었다고 하지만 힌남노의 상흔이 아직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닥친 태풍이라 불안감을 키웠던게 사실이다.
태풍 ‘힌남노’는 강한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의 발생 특성상 적도 인근에서 발생하고, 발생지점에서 북서 방향으로 전진하며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북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힌남노’는 적도 한참 위에서 발생하고 반시계 방향으로 남서진하다가 급격히 북상하였다. 북상하면서 다른 열대성 저기압을 흡수하며 ‘태풍 먹는 태풍’이 되어 더 강한 태풍으로 거듭났다.
안타까운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손실에도 그나마 ‘힌남노’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태풍의 경로와 크기를 실시간으로 지표면에서 상공까지 관측할 수 있는 31대의 기상레이더와 전국 510곳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 덕분이다. 이들 관측장비 덕분에 실시간으로 수백m 해상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행운이라면, 최근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이 개발되어 관측자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고, 태풍 진로와 강우량, 풍속에 대한 보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한국형 도구가 개발되어 좋은 재료가 귀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달초 서울지역 집중호우로 인명과 재산상 큰 피해를 보았다. 당시 동작구에는 435mm의 비가 내렸는데, 최근 30년 평균 강수량의 1/3이 한 번에 내린 것이다. 태풍 ‘힌남노’는 한라산을 지나가면서 1년 내릴 비에 버금갈 1059mm의 비를 쏟아부었다. 피해가 심했던 포항의 9월 6일 강수량은 342mm였지만 인근 지역 안동의 강수량은 17mm에 불과했다. 이렇게 하늘이 뚫린 듯 폭우가 내리고, 예측을 불허하는 지역별 편차는 ‘기후변화’가 아니면 달리 설명할 수 없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온난화가 1.5℃ 진행될 경우, 50년에 한번 발생하는 극한 고온 현상이 8.6배 증가하고, 관측 역사상 전례 없는 극한기상이 더 자주 발생할 거라고 전망했다.
2004년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이 태풍 ‘힌남노’로 2022년 우리나라에서 재현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넘어 뉴욕시를 덮친 거대한 해일이 해운대에서 수십 대의 차량을 뒤쫓는 것만 다를 뿐.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지금 아니면 늦는다"라고 아무리 절규해도,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었는데, 우리는 다른가.
현재와 같이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한다면, 21세기 말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전 지구 예측값보다 훨씬 높은 7℃ 상승할 거라고 기상과학원이 밝혔는데, 관심있는 부처나 지자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힌남노’와 같은 괴물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될 것은 자명한데도.
태풍과 같은 기상재해는 발생한 후에 대비할 수 없다. 앞으로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할 기상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 더 촘촘한 관측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형 예보모델을 더욱 발전시켜서 예측력을 높이고 세계 1등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 태풍의 55%(44개)가 북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고, 태평양 지역 경제협력체인 ‘APEC’의 기후센터(APCC)가 우리나라에 있으니, 우리가 개발한 모델로 권역 내 기상재해도 대비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흔히 날씨는 그날의 ‘기분’이고 기후는 ‘성격’으로 비유하곤 한다. 기분은 시간 지나면 쉽게 좋아지지만, 성격은 변하게 하기 어렵다. 이번 집중호우와 ‘이상한 태풍’을 보면서 멀리 ‘기후변화’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이 태풍 발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잘 대응할 수는 있다. 더 정밀하게 관측하고 더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정확한 한국형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구축하여야 한다.
기상재해 대응에 대한 정답은 현재를 밝히고 미래를 내다보는 ‘기후과학’이다. 기상재해가 더 광폭해진다 해도, 기후과학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고, 모든 부처와 지자체와 국민이 제 역할을 해야 하고, 또 시간만 놓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