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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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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뿔소'가 왔다…한국경제 곳곳서 경착륙 경고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9.18 11:04

고환율 지속에 제조업 위기…경제 펀더멘탈 이상 조짐
가파른 금리인상에 세계경제도 "파괴적 경기침체‘ 경고
경제석학들 "외환시장 안정·수출 확대책 마련 시급하다"

원달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김아름·이승주 기자] 한국 경제 곳곳에서 ‘경기 경착륙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처럼 요란한 진동을 우리며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지만 정부와 산업계는 두려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외환위기 당시 수준인 1400원에 육박하고 있고, 금리와 물가는 이미 한계치를 뛰어 넘었지만 상승세가 여전하다. 기업의 재고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까지 치솟던 집값은 완충 기간도 없이 급락하고 있다. 국내 물가도 먹거리를 시작으로 줄줄이 오르며 좀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석학들은 경기 연착륙을 위해서는 외환시장의 안정화와 금리 인상의 베이비스텝(정책 금리 조정을 조금씩 연속적으로 인상하거나 인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방법론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 수출 둔화에 재고도 증가 ‘제조업 위기’

18일 업계에 따르면 고환율과 고물가,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우리 경제의 동력인 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기업 활동으로 본 최근 경기 상황 평가’ 보고서를 보면 올해 2분기 산업활동동향의 제조업 재고지수 증가율은 작년 동기 대비 18.0%로 조사됐다. 분기별 수치로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분기(22.0%)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 폭이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의 재고지수 증감률이 작년 2분기 -6.4%에서 올해 2분기 22.0%로 치솟았으며 같은 기간 중소기업의 재고지수 증감률은 1.2%에서 7.0%로 상대적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실제 대한상의가 한국평가데이터에 의뢰해 매 분기 재무제표를 공시하는 제조업체 상장기업(약 1400여 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기업의 재고자산은 작년 2분기 61조4770억원에서 올해 2분기 89조1030억원으로 증가했다.

제조업 전체로는 올해 2분기 재고자산은 작년 2분기보다 39.7% 증가했다.

대한상의는 이처럼 재고가 급격히 늘어난 것과 관련해서 국제유가·원자재가격 급등에 대응해 원자재를 초과 확보하면서 제품 생산에 투입하고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해 제품 출하가 늦어진 것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글로벌 인플레이션,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수요 기반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요 위축을 반영하듯 실제로 제조업 생산지수와 출하지수는 4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출하 감소 폭이 생산 감소 폭보다 더 커 생산과 출하 간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의는 "우리 경제가 대외여건의 악화로 인해 수출증가율이 둔화되고 무역적자가 심화되는 등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내수 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이 급감할 경우 경기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하반기 정책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 물가·금리·환율 ‘3高’에 집값도 거래절벽…한국경제 펀더멘탈 흔들

외환시장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장중 달러당 1399.0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3월 31일(고가 기준 1422.0원) 이후 13년 5개월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4일 1390원을 돌파한 데 이어 1400원까지 넘봤으나, 16일 1388.0원으로 마감했다.

물가 급등세도 여전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국제 유가 하락 등이 반영되면서 1년 전보다 5.7% 오르며 전월(6.3%)보다 상승세가 둔화했다. 반면 여름 성수기 수요 증가로 개인서비스 물가는 6.1% 상승해 전월(6.0%)보다 높은 오름세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은 최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유가 전망, 기저 효과 등을 고려할 때 물가 오름세는 올해 하반기 중 정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나, 상방 리스크(위험)가 작지 않아 정점이 지연되거나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내다봤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번지면서 부동산 시장에서도 역대급 거래 절벽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이번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0.2를 기록하며 19주 연속 하락한 것. 매매수급지수가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시장에 집을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매수급지수는 조사 시점의 상대 비교지만, 단순 수치로만 볼 때 이번 주 지수는 2019년 6월 24일(78.7) 이후 약 3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 경제 석학들 "정부, 비정상적인 정책 정상화…기업, 수출·입 다변화 필요"

경제 석학들은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가장 큰 원인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을 꼽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미국의 큰 폭의 금리 인상이 가장 큰 문제"라며 "우리나라 자체도 물가 상승 요인이 있는데, 통화가치마저 상승하자 물가 상승 압력을 더 크게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가격 자체 상승에 의한 비용증가와 같은 요인도 한국 경제를 누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선 우선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수출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환율이 지속해서 오르면, 자본 유출은 물론 금리도 큰 폭으로 높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며 "먼저 외환시장을 안정화 시키고 금리 인상 폭을 베이비스텝(25bp)으로 유지하는 편이 경기 연착륙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정책적인 방향을 제시한 의견도 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 경기 상황은 ‘엔지니어링’이라고 하는 정책 조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경기 경착륙의 촉매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해외로 뛰쳐나가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비정상적인 경제 정책들을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노동시장의 혁신, 유연화를 강조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우리나라는 정책의 신뢰성 확보와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러 산업 정책은 물론이고 에너지, 공급적인 문제에 대해 잘 대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결해 나갈 것이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 경제 상황이 국내 요인이 아니라, 에너지가격 상승 등 해외요인에 의해 벌어진 상황이라 대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정부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이자부담, 원금상환 등의 유예조치를 실시하고 단기적으로 가구들이 무너지지 않게 복지차원의 지원책들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면서 중요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기업은 수출다변화 및 수입다변화 정책으로 대응해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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