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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
토마토와 휴가 그리고 축구를 삶의 기쁨이라고 여길 정도로 축구 사랑이 남다른 이탈리아에서 프로축구 1부 리그인 세리에A가 지난 2일 경기장 조명 시간 단축을 단행했다. 같은 시간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에서는 대낮같이 밝은 조명 아래서 야간 골프가 한창이었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각각 93%, 81%에 이르는 에너지 최빈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언제든지 에너지 위기로 경제가 마비될 수 있는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전시와 같은 위기감이 감도는 반면, 우리나라는 에너지측면에서는 이탈리아보다 결코 나을게 없으면서도 에너지 위기의 무풍지대처럼 지내니 어리둥절하다.
작년 말 유럽의 예상 밖 풍력발전 감소로 시작한 에너지가격 폭등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리며 그 추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러시아가 자국산 에너지를 무기화하며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량을 대폭 줄이자 즉각적으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유럽 각국이 부족해진 천연가스를 석탄과 LNG로 채우는 과정에서 석탄과 LNG 가격도 덩달아 오르며 전 세계 에너지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불과 2년여 전 코로나 발발 직후 0.99달러까지 떨어졌던 유럽의 LNG 가격이 지난 8월 26일 93.9달러를 찍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LNG의 기준가격인 JKM 가격도 60달러 선으로 작년 이맘때의 3배가 넘는다. 정상적 대응이 불가능한 믿기지 않는 폭등세다.
실제로 유럽은 비상체제가 가동 중이다. 헝가리는 아예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탈원전을 선언했던 독일은 가동 중단하려던 원전 3기의 계속 운전 방안이 논의 중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내년 3월까지 가스 수요를 15% 줄이는 비상체제에 돌입하며 대대적인 에너지절약 운동에 나서고 있다. 체코에서는 에너지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일부 유럽인들은 추위에 떠는 엄혹한 겨울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나무, 석탄 땔감을 준비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에너지 위기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위기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들릴 정도다. 에너지 위기 불감증이 심각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탓 할 일이 아니다. 개별 소비자들은 에너지 수급 상황을 알 길이 없다.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관 밸브를 잠가 가스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소비자들은 그저 가격만 보고 자신의 소비를 합리화할 뿐이다. 정상적인 가격은 남으면 내려가고 모자라면 올라간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에너지위기로 인해 크게 오른 가격에 비례해 위기감을 느끼고 에너지절약을 통해 위기에 대처하게 된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에너지 위기감 차이는 바로 가격 신호에서 비롯된다. 유럽 4개국(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과 일본의 올 3월 전력 소매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평균 36% 상승하였다. 에너지 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전기가격은 지난 3월까지 8년간 사실상 동결되었고, 그 이후 두 차례에 걸쳐 12% 가량 인상하였으나 인상률은 유럽에 비해 1/3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친 가격 통제의 결과다.
수급 위기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 통제된 가격 신호는 소비자들의 긴장감을 끌어내지 못한다. 조명시간이 단축된 이탈리아 축구장과 우리나라의 야간 골프가 대비되는 이유다.
물론 전기와 같은 생필품의 가격 급등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가격 인상 속도는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속도를 정하는 일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전문가의 영역이다. 전기가격을 결정하는 전기위원회를 전문가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이유다.
수급 안정은 가격 인상 억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급은 순리로 풀어야 한다. 모자라면 아껴 쓰는 것이 순리다. 야간 골프를 즐길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무리한 가격 통제는 프랑스혁명시대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사례처럼 위기를 더 키워 시장을 완전히 붕괴시킬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