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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앤에프 R&D센터 전경 |
[에너지경제신문 이진솔 기자] 정부가 우리 배터리 소재 기업의 미국 진출에 제동을 걸었다. 핵심 산업 기술에 대한 유출 우려가 있다며 재승인이 필요하다는게 정부 설명이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장자원부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0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통해 엘앤에프가 미국에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는 기술 수출 안건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산업기술보호위는 국가 핵심 기술 수출 승인 및 지정, 해외 인수합병(M&A) 승인 등 산업기술 보호 업무 전반을 논의하는 민관 합동기구로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비롯해 연구·개발(R&D)에 국가 예산이 지원되는 기업이 기술 수출하거나 해외 진출을 할 때는 산업부 장관 승인이 필요하다.
엘앤에프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 40%가량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소재다.
엘앤에프는 특히 니켈 함량을 극대화해 배터리 주행거리를 늘리는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엘앤에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극재에 니켈 함량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기술 바탕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테슬라 등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엘앤에프는 북미에서 향후 높은 전기자동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시장 공략을 준비해왔다. 특히 미국이 현지 생산 기업에 세액공제와 지원금 혜택을 주는 IRA를 통과시키면서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레드우드와 협력해 진출을 모색해왔다.
산업기술보호위가 불승인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미국 생산시설 설립에 따른 배터리 핵심 기술 유출 우려가 아주 해소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깔렸다. 산업기술보호위 관계자는 "대상 기술이 배터리 산업 경쟁력 근간이 되는 최첨단 기술로 해외 유출 시 국내 산업경쟁력과 국가안보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고 기술 이전에 대한 구체적 사유 부재, 기술 보호 및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대책 부족 등 사유로 불승인했다"고 말했다.
엘앤에프는 재심의를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상황에 따라 합작법인(JV)이 아닌 단독 진출 형태로 미국 진출을 타진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최수안 엘앤에프 대표는 "산업기술보호위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법무법인 등과 함께 국가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조치를 철저히 해 재심의 요청을 할 것"이라며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재 검토 중인 비즈니스 모델에 단독진출을 포함해 추가적 옵션을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국 배터리 투자에 ‘기술 보안 강화’ 더해질 듯
업계 일각에서는 미래 핵심 산업인 배터리 기업 미국 진출에 제동을 건 정부 결정을 두고 미국과 IRA 협상에서 쓸 카드를 마련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해석한다. IRA 시행에 따라 내년부터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직접 조달한 소재를 배터리에 탑재해야 한다. 국내 소재 기업이 북미에 공장을 세우지 못하면 미국 완성차 기업도 타격을 입는 구조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 "개별 기업에 관한 것으로 IRA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엘앤에프에 앞서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케미칼, 코스모신소재, 솔루스첨단소재 등 국내 배터리 핵심 소재 기업 미국 진출이 줄 잇는 상황이다. 또 이들 기업 역시 엘앤에프와 같은 산업기술보호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향후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투자 방향성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 법안 통과 전부터 국내 배터리 셀 업체가 미국에 JV 혹은 단독 형태로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소재 업체들도 오랫동안 북미 진출을 준비해왔다"며 "다만 기존 계획에 더해 이제는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 보완에 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jinsol@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