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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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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안보 강화할 호시절 허송한 ‘탄소중립법' 1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9.04 09:00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 지난해 8월 31일이다. 법 제정이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세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구호보다는 에너지위기라는 절실함이 처절하게 다가오는 세상으로 변한 것이다.

단 1년이라는 시간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는 탄소중립법안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으로 지금까지 논란을 힘들게 이어가고 있다. 무의미한 논쟁의 시간에 대한 허무함과 동시에 그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비해야 하기 위해서는 법제화 이전인 2020년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0년 10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넷제로’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전 세계 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이 엄청난 선언을 준비하기 위하여 2020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20년은 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제 14차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을 세워야 하는 해였다. 이미 2019년 제 3차 에너지기본계획법을 통해 탄소중립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2020년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전력수급의 중장기 계획과 여기서 정해진 전력공급을 위한 천연가스 장기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국가 에너지 장기계획을 세워야 했던 2020년 초반부터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인 록다운과 이동금지로 인해서 극심한 글로벌 수요감소가 나타났고 모든 국가가 경제공황상태에 빠져 들었다. 심지어 4월 20일에 유가가 배럴당 37.64달러까지 추락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이후 영국 천연가스 NBP는 100만 BTU당 0.99달러까지 떨어지며 1∼ 2 달러 짜리가 널려 있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심지어 미국 셰일업체들도 버티지 못하고 다수가 파산하는 등 바이어가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맘만 먹으며 얼마든지 유리한 협상조건과 낮은 가격으로 천연가스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고, 20년간 천연가스를 안전하고 저렴하게 공급받을 절호의 기회였으며 국가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2020년을 탄소중립만 만지작거리면서 장기계약이나 해외자산매입 등에 완전히 손을 놓고 허송하며 좋은 시절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2년도 채 안돼 천연가스 공급부족을 경험하면서 원유, 천연가스, 석탄까지 가격이 폭등하고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해 벌벌 떨게 될 상황을 아무도 대비하지 않았다. 이제 추운 겨울이 오면 더 큰 경제위기가 닥쳐올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2020년 그 좋았던 시절에 우리는 대통령의 무리한 탄소중립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을 동원하여 정책을 내기에 바빴고, 탄소중립위원회는 재생에너지 확대 일변도로 모든 국가 계획을 변경하려고 압박하였다. 결국 에너지 안보는 고려하지 않고 탄소중립에 맞추기 위하여 전력수급계획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70%까지 확대하는 무모하고 현실성이 전혀 없는 계획만 세우다가 시간을 다 허비하였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명운을 걸어버린 것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나와야 그에 맞춰 천연가스 장기공급계획이 마련되기 때문에 천연가스 계약을 해야 할 시점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2020년 내내 천연가스 장기계약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필자는 탄소중립 계획만 세우고 현실을 무시하는 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화석연료를 당장 안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격이 껌값이 됐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다.

국내 도입 장기계약 물량이 종료되는 시점이 도래하는 데 이 좋은 시절에 대체 물량을 찾아서 장기계약을 하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탄소중립의 현실성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좌초자산 우려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로 화석연료 투자 감소로 곧이어 화석연료 가격 폭등을 예상할 수 있었고, 재생에너지 자원의 투자 증가가 결국 광물자원 부족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음을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석연료 수요는 여전히 넘치고, 재생으로 대체하는 데는 천문학적 기술 투자와 엄청난 상용화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이러한 일은 쉽게 해결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법제화 1년이 지난 시점에서 2020년을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안타깝고 허탈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유가가 마이너스였고, 천연가스는 헐값이었던 시절을 기억하자니 현재 현실로 닥쳐오는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과 에너지 요금 폭등으로 인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 이제 곧 우리의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엄습한다.

미래는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렵지만 변화에 대한 과감함으로 포장된 개혁은 가끔은 현실의 제약을 무시하게 되고 대비할 수 없는 저소득층과 저개발국에게 더 큰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들은 변화를 대비할 수 없으며 결국 파산으로 이어질 운명에 처해 있다.

대한민국도 그런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친환경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님을 되새기며 2020년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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