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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반도체, 스마트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기술의 삼성’이 해킹·기술유출 등 악재에 고민하고 있다. 내부자 또는 자회사 직원이 기술·장비를 다른 곳에 넘기거나 외부 해킹 피해를 입는 일이 최근 계속되고 있다. 회사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산업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이춘 부장)는 전날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 전 연구원 2명과 부품 협력사 직원 2명을 구속기소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 혐의다.
기소된 연구원 2명은 세메스가 지난 2018년 개발한 ‘초임계 세정 장비’ 제조 기술을 빼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술은 부정경쟁방지법상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 장비는 초임계(액체와 기체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 이산화탄소로 반도체 기판을 세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장비는 삼성전자에만 납품됐지만 기소된 직원들은 이를 중국에 납품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회사를 설립한 뒤 단가를 더 쳐주겠다며 협력사까지 꼬드겼다고 전해진다.
삼성의 ‘초격차’ 기술력이 비정상적인 경로로 외부에 유출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반도체 기술 등 내부 기밀을 외부로 유출하려고 한 직원이 회사에 적발돼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해당 직원은 재택근무 중 전자문서 등 회사 보안자료에 접근해 스마트폰으로 이를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
같은 달에는 외부 해킹도 있었다. 외국 해커 그룹 랩서스로부터 해킹 공격을 받아 스마트폰인 갤럭시 구동에 필요한 일부 소스 코드가 공개된 것이다. 랩서스는 190GB에 달하는 삼성전자 기밀을 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렸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임직원 및 고객 정보 유출은 없었고, 정보 탈취 시도를 즉각 인지해 보안시스템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처럼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많이 보유한 기업 입장에서는 이 같은 변수에 대응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본다.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정답이긴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킹 등은 보안을 강화해 막을 수 있다지만 내부인이 마음을 먹고 기술을 유출하려 든다면 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다. 그만큼 경쟁사 대비 앞선 기술을 보유한 경우가 많고 투자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연구개발(R&D) 투자로만 5조 9222억원을 집행했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전문가들도 정부·국회가 나서 산업기술유출을 막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 등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되는 산업 경쟁력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국가핵심기술’ 등을 설정해 보호하고 있긴 하지만 범죄 관련 처벌은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스파이방지법’ 등을 여러 차례 개정해왔다. 특히 국가전략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영업비밀 절도죄가 아니라 간첩죄로 가중 처벌해 법정 최고형이 징역 20년, 추징금은 최대 500만달러(한화 약 59억원)에 이른다. 일본은 지난 2015년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자국 기업의 영업 기밀을 해외로 빼돌리면 가중처벌을 받게 했다. 손해배상 규모도 늘려 개인은 3억 3000만원, 법인은 112억원 낼 수 있게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업기술 유출사건은 총 593건으로 집계됐다. 피해 규모는 22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연도별로는 2017년 140건, 2018년 117건, 2019년 112건, 2020년 135건, 작년 89건이 일어났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보안 등 문제와 관련해서는 군대와 기업이 사실상 비슷한 상황이다. 기업의 산업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회사 내부통제 강화, 강력한 처벌 조항 마련, 사회적 잣대 변화 등이 필요하다"며 "처벌 조항을 더욱 세밀하게 추가하고 수위도 높이되, 형량을 끝낸다 해도 해당 범죄자를 지탄·조롱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