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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1호기 |
[에너지경제신문 김아름·전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향후 60년 동안 원자력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원전 업계와 전문가들의 원성이 높다.
문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공언하면서 국내 원전생태계가 다 망가져 이를 되살리기엔 쉽지 않다는 목소리다. 실제 기업들은 정부 기조에 따라 지난 5년간 원자력 관련 사업과 인재를 대폭 줄이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만큼 원전산업을 부활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한울 3·4호기가 빠지는 등 신규 원전 건설은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 원전 기술 정점에서 탈원전이라니…이젠 되살리기 쉽지 않아
1일 업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국내 원전사업은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원동력을 잃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9년에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4기다"라며 "이후 2019년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인증(DC)을 취득하기까지 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한국 원전 기술력과 경제성, 안전성 등을 전부 인정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들은 이를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발표했다"며 "당시 그런 일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 원전 기술력은 세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업계에선 세계 시장에 한국 원전기술력을 알릴 확대할 기회를 놓쳤다고 보며 이를 가장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다음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펼칠 지 알 수 없으나, 원전 생태계를 되살리기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살아난다고 해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도 "5년이 지났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놀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꾸준히 안정성과 경제성을 갖춘 원전 개발에 공을 들였다. 이미 기술력이 우리보다 한참 앞서 나가 있는 상태일 것이다"라며 "우리가 다시 뛰어들어도 이들을 따라잡기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돼야 할 것이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2017년에 영국 원전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가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체코와 폴란드·사우디 원전 수주전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여기에 한국이 첫 원전 수주에 성공했던 UAE원전도 2018년 11월 운영권 일부가 프랑스에 넘어가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통상적으로 원전 건설 발주 국가는 수주국에 운영과 유지 관리를 맡기는 것이 관례다. 한국의 원전 사업 폐기 선언이 외국 수주는 물론이고 운영권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 원전분야 매출 3년새 7조원 급감…업계 직격탄
이 불똥은 원전 관련 업체들의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의 원자력 산업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 산업 분야 총 매출액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인 2010년 16조7580억원에서 2016년 27조4513억원까지 증가했다. 그러다가 문 정부 출범 후 탈원전 정책이 시행된 2017년 매출액이 감소하기 시작, 2019년엔 20조7317억원을 기록하며 3년 만에 7조원 가량이 급감했다.
특히 국내 원전업계의 대표 역할을 하던 두산중공업의 피해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발주가 예상됐던 신한울 3·4호기를 포함, 천지 1·2호기, 신규원전 1 ·2호기 등 7조원 규모의 국내원전 건설계획이 백지화돼서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발전과 담수, 주단조, 건설 등 다양한 사업부문을 갖고 있지만 매출의 80%가 발전사업에서 발생하는 만큼, 피해는 클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두산중공업을 포함해 부품업체 등 원전 공급업체의 매출액은 2016년 5조5034억원에서 2018년 4조4941억원으로 1조원 가량 떨어지더니 2019년엔 3조9311억원으로 급감했다. 탈원전 정책 시행 전인 2016년과 비교해 29% 가량 감소한 수준이다.
고강도 구조조정도 단행한 탓에 원전부문의 인력 또한 빠져나간 지 오래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두산중공업은 문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인력을 대폭 줄였다. 이에 지난 2017년 1827명이었던 원전 인력은 3년 만인 2020년 1468명으로 감소했다.
◇ 전문가 "원전 축소 계획 그대로…문재인 발언 진정성 없어"
전문가들은 "원전 축소 계획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진정성 없는, 선거를 앞둔 국민 기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지난 28일 "탈(脫)원전 정책 실패가 확실시 되자 슬그머니 한 발 빼는 것"이라며 탈원전 정책에 선회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 원전 관련해서 수정된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노 위원은 "문 대통령은 향후 원전을 대폭 수정하기로 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수정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진정성도 없고, 단순히 선거를 의식한 발언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6%까지 줄이기로 했으며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신한울 3·4호기가 빠지는 등 신규 원전 건설은 계획되지 않은 상황이다. 원자력발전은 9차 계획 상 2034년까지 신규 및 수명연장 금지 원칙에 따라 신한울 1·2호기가 준공되는 2022년 26기로 정점을 찍은 후 2034년까지 17기로 줄어들 예정이다. 설비용량은 현재 23.3GW(24기)에서 2034년 19.4GW(17기)로 축소된다.이 계획대로라면 2034년 전원별 설비(정격용량 기준) 구성은 신재생(40.3%), LNG(30.6%), 석탄(15.0%), 원전(10.1%) 순이 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역시 "지금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60년 후엔 가동할 원전이 4기 정도 밖에 안된다"며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5년 동안 한전과 원전 업계가 입은 피해에 대해 사과 한 마디도 없어 이번 발언이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