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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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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임기말 '탄소중립 대못박기' 중단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8.09 10:05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노동석 위원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기관장의 임기가 끝나 가면 주요사안은 후임 기관장에게 결정을 미루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이 정책의 일관성이나 이행력을 높이는 것일 뿐 아니라 후임자와 직원들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그러나 기관과 정권의 속성은 다른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분명치 않으나 정권 말기가 되면 정책, 인사, 법 제정 등 여기저기 대못 박기에 분주해진다. 현 정권이 추진한 정책이 차기 정권에 의해 쉽게 변경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대못이 클수록 빼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에너지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주 탄소중립 시나리오 3개안과 함께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 일정을 발표했다. 탄소중립 시민회의를 구성하고 숙의형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로드맵 권고안을 수립한다고 한다. 숙의형 여론조사 또는 공론조사는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닌 선택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학습과 토론을 통해 사회적 갈등 사안을 이해시키고 조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 초기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의 공사재개 결정 여부에 적용했던 방법이다.

탄소중립위원회는 7월 위원회안 마련, 8월 각계 의견수렴과 탄소중립 시민회의(500여명으로 구성) 출범, 9월 시민참여단 토론회와 일반국민 온라인 설문조사, 10월 위원회 심의·의결 및 국무회의 의결 등으로 일정을 잡았다.

이런 일정에 따라 출범시킨 시민참여단은 1개월여 뒤인 내달 11~12일 쟁점별 종합토론을 한 뒤 온라인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탄소중립위는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재개 여부를 묻는 간단한 공론조사도 활동기간이 3개월 이상이었다. 탄소중립 로드맵은 사안의 복잡성 뿐 아니라 파급영향이 막대하다. 천연가스와 수소가스, 암모니아 발전, kW와 kWh 구분 등 에너지/전력의 기본개념을 정확히 알기 힘든 일반시민이 실시간 수요와 공급의 일치, 태양광·풍력발전의 변동성(간헐성), 출력제어, 배터리의 충·방전, 주파수 제어 같은 난해한 내용이 포함된 탄소중립안을 단기간에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일반시민들은 정부가 의도 또는 유도하는 대로 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탄소중립 로드맵은 작성시한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서둘러 졸속으로 결정할 일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시간의 촉박함으로 인한 ‘수박 겉핥기’식 공론조사를 걱정하고 있다. 정부와 탄소중립 위원회가 서둘러 10월까지 로드맵을 결정하려는 의도가 차기 대통령 선거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두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시민참여단은 위원회가 제시하는 시나리오안 중에서만 선택이 가능하다. 스스로 탄소중립안을 수립할 능력도 권한도 없다. 그래서 제시되는 선택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탈원전·탈석탄·재생에너지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은 석탄·LNG 발전을 전부 중단하거나 최소화하고 원전비중은 2018년의 23.4%에서 2050년 6.1%∼7.2%로 대폭 낮추되 재생에너지의 전력 공급 비중은 최대 70.8%까지 높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2050년 전력수요를 현재의 2.3배로 예측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 정도의 대규모 전력수요를 태양광과 수소터빈·암모니아 발전으로 공급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현실성 없는 탄소중립안만 만들어질 뿐이다.

탄소중립은 단순히 에너지 정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의 산업정책이면서 고용정책이고, 민생정책이다. 국민들의 생활패턴이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 결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소요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전력수요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대강 계산한 탄소중립 에너지비용이 적게 잡아도 2050년까지 750조∼1500조원이다. 국민경제적 차원의 소요비용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들에게 용돈 정도를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 소요재원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어느 대선후보의 공약처럼 탄소중립이 새로운 경제 동력·새로운 성장 기회·양질의 녹색일자리 제공 등으로 별 생각 없이 미화되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탄소중립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의 감내를 요구한다.

현 정부의 편협한 에너지 인식에 기반한 탄소중립 로드맵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실행가능한 탄소중립 안이 작성되려면 시간적인 여유와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도 어렵다.

탄소중립 로드맵은 차기 정부로 넘겨 수립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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