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오랜 아성을 허물었다. 지난 28일 발표한 2025년 연간 영업이익에서 사상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추월하며 '메모리 반도체의 판도'를 바꿔버렸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까지 고전했던 삼성전자도 29일 공시한 2025년 연간 실적에서 반도체 영업이익이 완연한 회복세를 나타내 올해 반도체 헤게모니를 놓고 두 공룡 간 공방전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SK하이닉스의 수성 전략과 삼성전자의 탈환 전략의 관전 및 승패 포인트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의 실적 우열을 꼽고 있다. 삼성전자는 29일 공시에서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이익 43조6011억원으로 전년보다 33.2%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연간 매출은 333조6059억원으로 전년대비 10.9% 늘었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24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도 하루 앞서 지난해 실적 공시를 통해 매출 97조1467억원,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치다. ◇ 연간 기준 영업익 1위 삼성전자→SK하이닉스 첫 '순위바꿈' 이로써 SK하이닉스는 연간 영업이익 기준으로 삼성전자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분기 기준으로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을 웃돈 바 있지만, 연간 기준 역전은 처음이다. SK하이닉스의 삼성전자 추월이 갖는 상징성은 적지 않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에는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 가전 등 전사업 부문이 모두 포함돼 있는 반면,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단일사업 구조에서 올린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과 반도체 슈퍼사이클 국면에서 SK하이닉스가 고수익 제품 중심으로 실적을 끌어올린 흐름이 맞물린 결과로 업계는 풀이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하반기 들어 반도체 회복세에 접어들며 빠르게 실적을 개선했지만, 상반기(1∼2분기)에 벌어진 격차(SK하이닉스 16조6000억원·삼성전자 1조5000억원)를 좁히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이다. 특히, 삼성전자보다 생산능력(캐파)이 작은 SK하이닉스가 우위의 실적을 낸 배경으로는 고부가 제품인 HBM에서 시장 1위 지위를 공고히 한 점이 꼽힌다. 더욱이 지난해 AI 반도체 수요 증가로 가격 상승세를 탄 범용 D램에서 수익성을 크게 끌어올린 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57%로, 삼성전자(22%)와 2배 이상의 격차를 나타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최신 엔비디아 인공지능(AI) 가속기에 탑재되는 HBM3E(5세대) 물량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HBM 시장은 올해도 고공행진이 예상된다. 엔비디아와 AMD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도 자체 AI 칩 개발을 위해 HBM 물량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HBM 시장 규모를 546억달러(약 78조원)로 추정하고 전년 대비 58%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업계는 HBM4가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향후 수년간 AI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 같은 글로벌 HBM 시장의 우호적인 환경과 사업 전망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6세대 HBM4의 공급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정면 승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HBM4 초기 공급에 성공할 경우 주요 고객사를 선점할 수 있고, 수율·양산 안정성이 곧바로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업계의 관심은 삼성전자의 반격 가능성에 쏠려 있다. 삼성전자가 이르면 2월부터 엔비디아에 HBM4를 업계 최초로 정식 공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초기 공급 속도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경우, 현재 SK하이닉스가 쥐고 있는 기술·시장 주도권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날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HBM4 개발 착수 단계부터 제덱(국제반도체표준화기구·JEDEC) 기준을 상회하는 성능 목표를 설정했고, 주요 고객사들의 요구 성능이 높아졌음에도 재설계 없이 지난해 샘플을 공급한 이후 순조롭게 고객 평가를 진행해 현재 퀄(품질) 테스트 완료 단계에 진입했다"고 반격 준비를 시사했다. 이어 “당사 HBM4는 고객들로부터 차별화된 성능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피드백을 받고 있다"며 “이미 정상적으로 양산 투입과 생산이 진행 중이며, 주요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오는 2월부터 최상위 제품(11.7Gbps)을 포함한 HBM4 양산 출하가 예정돼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엔비디아에 HBM4 샘플을 유상 공급한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차세대 AI 칩 공급망에 본격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HBM4 양산 시점을 앞당길수록 엔비디아 공급망 내 비중을 확대할 수 있는 만큼, 시장 우위 선점에서도 유리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HBM 매출이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했다. 하지만, 반도체 리더십을 잡은 SK하이닉스 역시 HBM4 시장 주도권 유지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SK하이닉스는 29일 콘퍼런스 콜에서 “HBM4 역시 HBM3(4세대), HBM3E와 마찬가지로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목표로 한다"고 수성 의지를 피력했다. HBM2E(3세대) 시절부터 고객·인프라 파트너사와 협력하며 시장을 개척해 온 선두주자로서, 축적된 양산 경험과 품질 신뢰가 단기간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생산력 극대화에도 불구하고 고객 수요를 100% 충족하기 어려워 일부 경쟁사(삼성전자)의 시장 진입이 예상된다"면서도 “성능과 양산성, 품질을 기반으로 한 당사의 리더십과 주도적 공급사 지위는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간 실적 역전이라는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패권 경쟁은 이제 HBM4라는 새로운 전장터로 옮겨졌다. SK하이닉스의 '수성'이 이어질지, 삼성전자의 '대반격'이 다시 역전극을 가져올지 지켜보는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시선은 올해 양사간 HBM4 진검승부에 집중될 전망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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