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국전력 본사. 사진=한국전력
한국전력 사장 자리는 본래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쉽게 넘보지 못했다. 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인 만큼 적어도 한전만큼은 에너지와 산업을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 관행을 깬 사람이 김동철 현 사장이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 사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한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인 출신 사장이 됐다.
취임 당시 한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국제 에너지가격 급등과 전기요금 인상 지연으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 김 사장은 자구책과 전기요금 정상화를 강조했고 한전의 실적도 일부 개선됐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인 출신 사장의 한계도 드러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김 사장의 존재감은 급격히 옅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쏟아지는 동안 한전이 정책의 현실성을 따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정부 방침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는 의미다. 김 사장의 임기는 다음달 19일까지다.
공기업 사장 인선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선때 당선을 도왔던 인물들이 수장으로 지명되곤 한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한국가스공사에는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 홍의락 사장, 한국지역난방공사에는 성남에서 시민·환경운동을 해온 하동근 사장, 한국에너지공단에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을 지냈고 햇빛소득마을을 주도했던 최재관 이사장이 선임됐다. 내부보다 외부 인사를 통해 조직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중이 들어 있기도 하다.
한전도 비슷한 길을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한전 사장 후보군이 3파전으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김영록 전 전남지사다.
김 전 지사는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 활동을 오랜 기간 해왔다. 전남 해남·완도·진도 지역구에서 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때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냈다. 전남지사로는 지난 2018년부터 올해까지 8년 간 지냈다. 김동철 사장의 바통을 받아 호남지역 정치인이 수장직을 이어 갈 것이란 관측이 높다.
그러나 한전은 단순히 정부가 시키는 대로 정책을 실행하는 공기업이 아니다. 발전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송·배전망을 구축하며 전국의 전기를 사고파는 전력산업의 핵심이다. 정부가 내놓은 전력 정책이 실제 전력시장과 계통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차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연내 도입이 추진되는 산업용 지역별 전기요금제부터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 확충,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대응까지 어느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정무적 감각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전문성까지 갖춘 인물이 한전 사장으로 와야 한다는 업계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후보군으로는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거론된다.
정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기조 속에서 한수원 사장을 맡아 탈원전에 앞장 섰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원전 수출에서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6월 결실을 본 체코 원전 사업 역시 정 전 사장이 한수원 사장으로 있던 문재인 정부 시절 본격적으로 뛰어든 사업이다.
21대 대선을 앞두고는 민주당 경제성장위원회 에너지 분야 분과위원장을 맡아 현 정부의 'U자형 에너지고속도로' 구상에도 아이디어를 보탠 것으로 전해진다.
자기 소신이 강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한수원 사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과 여러 차례 부딪혔고 결단력 있는 업무 스타일 때문에 내부에서는 '독일병정', '백상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정치권 출신 인사와 비교하면 정부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필요할 경우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종환 전 한전 사업총괄 담당 부사장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 전 부사장은 약 35년동안 한전에서 일한 뒤 정년 퇴임했다. 재직 기전력 판매 같은 한전 본연의 사업부터 해상 경험 등 신사업까지 두루 경험을 쌓아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2020년부터 퇴임 전까지는 사업총괄 부사장을 맡기도 했다.
퇴임할 때는 의전차량을 타는 관례를 깨고 이 전 부시장이 타고 다니던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탄 채 떠나는 모습으로 업계에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한전은 앞으로 몇 년간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현실로 옮기는 최전선에 서게 된다. 정부 정책을 얼마나 빠르게 집행하느냐 못지않게 그 정책이 전력산업에서 지속 가능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깨진 '비정치인 출신 한전 사장'의 관행을 이어가며 다른 에너지 공기업처럼 정치권 출신 인사에게 한전을 맡길지, 아니면 전력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한전만큼은 전문성을 앞세운 인사를 택하며 균형을 맞출지 에너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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