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 리밸런싱 주요 내용
▲그래픽=전지성 기자
SK그룹이 연속으로 핵심 계열사의 자회사 합병을 결정하며 사업 리밸런싱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리막 계열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흡수하기로 한 데 이어, SK가스는 SK어드밴스드를, SK에코플랜트는 SK에코엔지니어링을 각각 합병하기로 했다.
그동안 비주력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해 재무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업 연관성이 높지만 실적과 재무구조가 악화한 자회사를 본체에 흡수해 자금과 의사결정 체계를 일원화하는 단계로 넘어간 모습이다. 28일 업계에서는 외형 확대와 외부 투자 유치를 위해 사업을 분리하던 과거 전략이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통합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쳐 정유·배터리 사업의 변동성을 LNG·발전 사업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으로 보완했다. 이후 비핵심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해 재무 부담을 낮추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연쇄 합병은 리밸런싱의 무게중심이 자산 매각에서 법인 통폐합과 사업 운영 효율화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 전기차 둔화 직격탄 맞은 SKIET…상장 6년 만에 소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열고 SKIET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IET의 합병비율은 1대 0.1174540이며 합병기일은 내년 1월 1일이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SKIET는 상장 6년 만에 소멸하고 주주들은 보유 주식 1주당 SK이노베이션 주식 0.117454주를 받게 된다.
SKIET는 2019년 SK이노베이션 소재사업을 물적분할해 출범한 뒤 2021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을 성장동력으로 삼았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 북미시장 회복 지연으로 실적이 악화했다.
SK이노베이션은 합병을 통해 분리막 사업의 자금조달과 투자·생산·판매 의사결정을 직접 관리할 방침이다. 조직과 기능 통폐합 등을 통해 연간 약 600억원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개선을 이루고 합병 후 2년 이내 EBITDA 흑자, 2029년 영업흑자를 달성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전기차에 집중된 분리막 수요처를 SK온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과 연계해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독립법인 상태에서는 차입금 상환과 추가 자금조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도 합병에 영향을 미쳤다. 다만 SKIET 소액주주에게 SK이노베이션 신주를 발행하면서 기존 SK이노베이션 주주의 지분이 일부 희석되는 점은 변수다. SKIET 주주의 주식매수청구 금액이 3500억원을 넘으면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건도 붙었다.
◇ 4년 연속 적자 SK어드밴스드…SK가스가 재무 부담 흡수
SK가스는 26일 프로판탈수소화(PDH) 사업 자회사인 SK어드밴스드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합병기일은 오는 11월 4일이다. SK가스가 실질적으로 지분 100%를 보유한 만큼 신주를 발행하지 않는 1대 0의 무증자 합병으로 진행돼 기존 주주 지분율에는 변화가 없다.
SK가스가 해외에서 프로판을 조달해 공급하면 SK어드밴스드가 이를 원료로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구조다.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연결돼 있지만 원료 구매와 생산·판매, 자금조달은 서로 다른 법인에서 이뤄져 왔다.
SK어드밴스드는 중국의 대규모 증설에 따른 프로필렌 공급 과잉으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약 1400억원, 순손실은 약 2450억원에 달했고 올해 3월 말 부채비율도 400%를 넘어섰다.
합병 후에는 프로판 가격과 프로필렌 판매가격을 함께 고려해 공장 가동률을 조정하고 원료 조달부터 제품 판매까지 손익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 SK가스의 AA급 신용도를 활용해 SK어드밴스드의 차입금을 차환하면 금융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외부 합작사 지분을 정리한 데 이어 법인까지 흡수하면서 향후 설비 전환이나 감산 등 구조조정도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반면 프로필렌 공급 과잉이 장기화하면 자회사가 부담하던 화학사업 손실이 SK가스 본체의 별도 실적과 재무구조에 직접 반영된다. 안정적인 LPG·LNG·발전사업의 현금흐름으로 부진한 화학사업을 얼마나 정상화할 수 있는지가 합병 성과를 좌우할 전망이다.
◇ 5년 전 떼어낸 플랜트 다시 품는 SK에코플랜트
SK에코플랜트도 27일 100% 자회사 SK에코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합병기일은 오는 12월 1일이다.
SK에코엔지니어링은 2021년 SK에코플랜트가 플랜트사업을 물적분할해 만든 회사다. 배터리와 바이오, 복합화력·열병합발전, 터미널 등 첨단·에너지 플랜트의 설계·조달·시공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배터리업계의 투자 축소와 계열사 발주 감소로 수익성이 악화했다. SK에코플랜트는 올해 2월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상환전환우선주를 약 3620억원에 매입해 SK에코엔지니어링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고, 한 달 뒤 500억원을 추가 출자했다. 반복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별도 법인을 유지할 실익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합병으로 SK에코엔지니어링의 설계 역량과 SK에코플랜트의 시공·사업관리 역량이 하나의 법인에 모인다. 반도체 생산공장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초기 기획과 설계부터 조달·시공·준공까지 일괄 수행해 수주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그룹 내 반도체·AI 인프라 투자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 자회사 부채 사라지는 것은 아냐…통합 이후 성과가 관건
세 합병은 모두 법인 수를 줄이고 중복 관리비용과 내부거래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별도로 운영하던 이사회와 회계·세무·인사·자금조달 조직을 통합하고 인력과 현금을 사업 우선순위에 따라 직접 배분할 수 있다.
다만 합병만으로 SK그룹 전체의 부채와 손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자회사 실적과 차입금은 이미 모회사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합병 이후에는 자회사의 사업 위험이 모회사 별도 재무제표에 직접 반영된다.
이번 연쇄 합병의 성패는 단순한 계열사 수 감축보다 SKIET와 SK어드밴스드의 적자 축소, SK에코플랜트의 반도체·AI 인프라 수주 확대 등 실제 사업 성과로 판단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성장사업을 분리해 외부 자금을 유치하는 전략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중복 법인을 없애고 그룹의 자금과 역량을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리밸런싱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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