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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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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가진 회복력 활용해 기후 위기 해결…‘에코테크’가 뜬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5.21 11:19

숲·바다·습지가 첨단 인프라인 미래
굴·해초의 힘으로 해안선 지키는 기술
사막을 푸르게 하고 도시를 숨쉬게 해
자연과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산업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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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야심차고, 가장 혁신적인 자연 복원 사업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마커 바덴(Marker Wadden) 프로젝트는 준설토로 인공 섬과 습지를 조성해 생물다양성 회복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대규모 인공개입 자체가 또 다른 생태 교란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에코테크는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추구하더라도, 어디까지 인간 개입을 허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논쟁거리다. (자료=Natuurmonumenten)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해수면 상승, 초대형 산불과 폭염….


인류가 맞닥뜨린 환경 위기는 갈수록 복합적이고 거대해지고 있다. 이른바 환경신데믹(eco-syndemic) 혹은 다중위기(polycises)다. 이는 기존의 산업기술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




이에 과학계는 새로운 해법을 주목하고 있다. 바로 에코테크(Ecotech), 우리말로 '생태기술'이다.


자연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회복력과 순환 원리를 첨단 기술처럼 활용해 인류 문제를 해결하자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린 논문 '에코테크: 지구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연 과정의 활용'에서 체계적으로 제시됐다. 이 논문은 미국 듀크대 니컬러스 환경대학의 브라이언 R. 실리먼 교수 연구팀이 세계 각국 연구자들과 함께 작성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생태계를 수동적 배경이 아니라 인류 생존을 떠받치는 능동적 기반시설(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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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기술을 확장 발전시키는 에코테크. 바이오기술이 세포와 유전자처럼 생물체 내부의 미시적 영역을 다루며 발전해왔다면, 에코테크는 개체에서 생물권 전체까지 생태계의 더 큰 조직 수준으로 확장되는 기술이다. 두 기술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며, 세포·조직 수준의 바이오기술이 탄소 포집과 환경 복원 같은 생태계 차원의 에코테크 구현을 뒷받침한다. (자료=Science Advances, 2026)


◇유전자 조작 시대에서 생태계 설계 시대로




지난 80년간 인류는 바이오기술의 힘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유전자 조작, 세포치료, 백신 혁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단일작물 재배는 생물다양성을 해쳤고,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농업은 토양과 수질을 악화시켰다.


에코테크는 이러한 방향을 크게 바꾼다. 바이오기술이 생물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미시(微視)기술이라면, 에코테크는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 전체를 다루는 거시(巨視)기술이다.


쉽게 말해, 나무 한 그루의 DNA를 바꾸는 대신 숲 전체가 더 건강하게 순환하도록 설계하는 기술이다.


에코테크는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데 8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생태계 경작: 네덜란드의 '마커 와덴(Marker Wadden)' 프로젝트는 준설된 퇴적물을 활용해 인공 섬과 습지를 조성하여 수질을 개선하고 생물 다양성을 높였다.


△자연 기반 해법: 생태계 먹이사슬 포식자를 재도입하는 '리와일딩(Rewilding)'을 통해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에너지 흐름과 영양 순환을 회복시킨다.


△생태 모사: 흰개미집의 환기 구조를 모방하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실내 공기를 순환시키는 능동적 냉각 건물을 설계한다.


△생태계 재료 과학: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바이오닉 산호는 실제 산호 구조를 복제하여 미세 조류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광효율을 높인다.


△생태계 유전학: 환경 DNA(eDNA) 기술을 활용해 물이나 공기 샘플만으로 그 지역의 생물 다양성, 침입종 유무, 멸종 위기종의 이동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생태계 에너지: 식물-미생물 연료 전지 기술을 통해 습지 식물의 뿌리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한다.


△생태 치료: 꿀벌의 면역력을 높이는 유익균(Probiotics)이나 박쥐의 질병을 치료하는 항생제를 환경에 살포하여 야생 동물의 복원력을 높인다..


△생태-지구공학: 바다에 철분을 공급하여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대기 중 탄소 흡수량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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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해안선(Living Shoreline).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놀 쇼어스에 있는 트리니티 센터의 생태해안 조성 프로젝트. (사진=레이첼 비세시/노스캐롤라이나 해안 연맹)


◇세계 곳곳에 에코테크 사례들 등장


①콘크리트 대신 살아 있는 방파제: 자연기반 해법


대표 사례는 미국 동부 해안의 리빙 쇼어라인(Living Shoreline·살아 있는 해안선) 프로젝트다. 기존 해안 방어는 콘크리트 방파제를 세운다. 즉각적 효과는 크지만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생기고 유지비가 늘어나면서 해양 생물 서식지를 파괴한다.


이에 비해 에코테크는 굴 암초와 해초, 염습지를 복원해 파도의 에너지를 흡수하도록 만든다. 굴은 시간이 갈수록 군락을 키워 구조를 강화하고, 식물 뿌리는 토사를 붙잡아 침식을 막는다. 자연이 스스로 자라며 방어력을 높이는 셈이다.


논문은 이런 방식이 일부 지역에서 전통 방파제보다 장기 복원력과 경제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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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거대한 녹색 방벽(Great Green Wall)'. (사진=Rethinking the Future)

②아프리카 '거대한 녹색 장벽': 생태계 경작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사헬지대에서는 '거대한 녹색 방벽(Great Green Wall)' 사업이 진행 중이다. 주민들이 땅에 반달형 홈을 파면, 여기에 빗물이 고이고, 수분이 오래 유지된다. 이 구덩이에 토착 식물이 자라면서 토양도 살아난다.


단순한 조경사업이 아니라 자연의 물순환 구조를 모방한 에코테크다.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토양 유실은 줄어들고, 농업 생산성은 증가하고, 지역 일자리가 늘어난다. 또, 기온 상승이 완화되고, 탄소 흡수가 늘어난다.


환경 복원이 곧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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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슈퍼트리. (사진=위키피디아)

③나무처럼 숨 쉬는 도시, 싱가포르 '슈퍼트리': 생태계 재료 과학


싱가포르 남부 마리나베이(Marina Bay) 해안 매립지에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의 슈퍼트리는 도시형 에코테크의 상징이다.


슈퍼트리는 높이 50m 안팎의 인공 구조물 표면을 식물이 덮고 있다. 태양광 패널이 전기를 생산하고,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며, 식생이 도시 열을 낮춘다.


연구진은 주변 기온을 최대 5℃ 낮추는 냉각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도시 인프라가 단순한 철골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 장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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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테크는 위성 원격탐사와 환경 DNA 분석, 음향·화학 신호 감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육지와 바다 생태계를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살아있는 해안선과 습지농업, 다종양식, 생체모방 암초, 풍력에너지 같은 다양한 응용 사례는 인간의 발전과 생태계 회복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Science Advances, 2029)


◇돈이 되는 자연…미래 거대 시장 가능성


에코테크는 환경운동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산업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생태복원 서비스, 자연기반 탄소시장, 환경센서, 생태 데이터 분석, 친환경 도시 인프라 등에서 거대한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강력한 특허 보호와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면, 2030년대에는 바이오기술 시장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산업혁명이 석탄과 철을 활용했다면, 미래의 생태혁명은 숲과 바다, 습지와 미생물을 활용하는 시대가 될 수 있다. 바로 자연이 자원이고, 자연이 자본이다.


에코테크는 자연을 지키자는 선언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산업 전략인 셈이다. 이 때문에 에코테크가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추구하더라도, 어디까지 인간 개입을 허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논쟁거리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자연이 가진 회복력을 잘 파악해서 그것을 정교한 기술로 살려내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생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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